[도심속 거위농장]화려한 압구정에 웬 촌티나는 '거위카페'?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9시 02분


“꾸웩꽥 꾸웩꽥(어서오세요).”

거위 세 마리가 반갑게 인사하는 곳, 남아메리카 어느 농장 혹은 옥수수밭이 내다 보이는 조용한 선술집에 온 느낌. 브라질 칠레 등 남미의 여유로운 노랫가락도 흘러내리는 곳.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밀크바(02―514―5872)’다.

개 고양이도 아니고 하필 거위를 기르느냐는 물음에 주인 조용남씨(39)는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황금알을 본 듯한 기분을 주고 싶고, 또 거위는 꼭 개처럼 사람들을 잘알아본다”는 이유를 댔다. 사람만 들어오면 잊지않고 꽥소리를 질러대며 아는 체를 한다는 것.

다른 인테리어도 첨단이 살아숨쉬는 이 동네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인사동 어딘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앤티크(서양 골동가구)가 많고 소품도 옛날식이다.

‘타임’‘시스템’등 국산의류브랜드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일했던 조씨가 1년여를 꼬박들여 준비, 달포전쯤 문을 열었다. 그동안 해외출장 다니며 틈틈이 벼룩시장 등지에서 옛날 소품들을 구입했다. 1920년산 헤르메스 타자기, 1940년대 일제전화기, 2차대전 당시 독일제 선풍기 등이 있어 조그만 박물관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1층에선 삼겹살에 소주, 2층은 커피 주스 토스트 등을 판다. 뭔가 자연지향적인 분위기에 맞는 것 같지 않아 주차시설은 따로 갖춰놓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당연히 많고 뭔가 영감을 받으려는 작가 디자이너들의 발길이 줄을 이어 1인용 테이블도 유난히 많다.

“압구정동 개발 역사도 20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곳에도 하나쯤은 고전적이고 정겨운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조씨는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에 고추도 심을 예정이라며 “시골 구경을 해본 일 없는 아이들이 동화 속 시골 할머니댁같은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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