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人유학생 황당한 경험]박사과정 "초등교 성적표내라"

  • 입력 2000년 11월 8일 18시 58분


“한국은 외국 유학생들에게 ‘제발 우리나라로 오지 마세요’라고 절규하는 것 같아요. 제도나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관계기관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어요.”

최근 한국정부가 초청하는 장학생으로 뽑혀 서울대 박사과정을 신청한 일본인 K씨(30). 그는 학교측이 초등학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했다.

‘초등학교 성적증명서라는 서류가 있기는 있나?’

스스로 의아해 하면서 K씨는 자신의 모교에 문의했으나 “그런 서류는 당연히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학교 직원에게 서류가 필요한 사정을 간곡히 설명하자 그 직원은 “그런 이상한 서류를 요구하는 대학도 다 있느냐”며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K씨는 자신이 직접 컴퓨터로 졸업증명서 양식을 만들어 초등학교에서 확인 도장을 받는 편법을 썼다. 성적증명서는 생활기록부로 대신해야 했다.

K씨가 이처럼 고생한 것은 서울대 국제교류센터가 지난해부터 석박사 과정 지원자에게 초중고교 졸업 및 성적증명서를 제출토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기 때문. 서울대측의 설명은 이렇다. “무시험 전형으로 유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국내 최고 대학에 걸맞은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절차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대 관계자조차 “솔직히 초등학교 성적증명서까지는 필요 없는 것 아니냐”며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K씨는 “나는 이런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었지만 동료 중에는 무슨 서류가 필요한지 확인을 못해 유학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외국인 유학 지망자들이 국내 대학에 대해 정보가 어두운 것은 이들의 초청을 맡고 있는 교육부 산하 국제교육진흥원의 무성의한 일처리 때문. 진흥원은 정부가 각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초청할 때 그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초청 받은 외국인 대부분이 이곳을 통해 국내 대학의 정보를 얻고 있다.

그런데 진흥원은 올해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서울대 석박사 과정 입시요강 설명회를 신청기간(10월 16∼20일)을 불과 3일 남겨둔 지난달 13일에야 개최했다. ‘슈퍼맨’이 아닌 이상 3일만에 초중고교 졸업 및 성적증명서를 비롯, 부모가 외국인임을 증명하는 서류 등 각종 복잡한 증명서 17, 18종을 모두 준비할 수는 없다는 게 유학생들의 항변이다.

올해 정부 초청으로 유학 온 일본인 Y씨의 경우 지망대학의 외국인 기숙사에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은 미리 추첨신청서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진흥원측이 추첨일 이틀 전에 알려줘 끝내 기숙사 신청을 포기했다.

이에 대해 진흥원 관계자는 “진흥원이 아무리 유학 오는 사람을 돕는 주관 부서라 해도 어떻게 그런 세세한 일까지 다 가르쳐 주느냐”며 오히려 유학생들을 질책했다.

<이완배·김수경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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