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 기능미화원]"景氣 좋은땐 하루 200켤레 닦았는데…"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8분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이었지만 오늘도 영 시원찮다. 10여년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후문주차장 근처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정병윤씨(50). 열네살 때 경남 밀양에서 무작정 상경, 서울역에서 ‘구두통’을 들면서부터 시작한 일이 36년째다. 이 일대 기능미화원 가운데서는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썰렁한 가게를 한참 동안 지키고 있는데 모처럼 찾아온 손님이 구두 닦는 값을 깎아달란다. 손님이 돌아간 뒤 기자가 “구두 닦는 값마저 깎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정씨는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단골손님이니까요. 그리고 요즘 다들 어렵잖아요.”

한동안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졸업했다고 떠들썩했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구두를 모으려 사무실을 다녀보면 외환위기 때 늘어난 빈 책상들이 아직 그대로인 곳이 많아요. 한창 때 둘이서 하루 200여켤레를 닦았지만 그 때 이후로는 하루 70∼80켤레를 닦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둘이서 그렇게 버는 한달 수입이 100여만원 내외. 구두 한 켤레를 닦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안팎이다.

구두 닦는데 무슨 비결이나 기술이 있겠느냐는 이들도 있겠지만 정씨는 오랜 세월 동안 숙련된 손끝에서 묻어나오는 ‘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먼저 구둣솔로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낸 뒤 구두약을 묻히는 일부터 시작된다. 다음은 구두약을 가죽에 스며들도록 골고루 입히는 일.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 이 과정에서 정씨는 일일이 두 손가락에 약을 묻혀 바른다. 헝겊으로 문지르면 약이 헝겊에만 묻고 정작 구두에는 배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과정은 헝겊에 물을 묻혀 광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요즘처럼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하면 가죽을 부드럽게 하고 몸도 따뜻하게 녹이기 위한 난롯가 구둣방의 필수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탄난로에서 석유곤로를 거쳐 이제는 정씨가 사용하는 가스난로나 전기난로 등으로 교체됐다.

정씨는 “약 잘 바르고 광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성”이라며 “이것이 10년 넘도록 단골손님이 찾는 비결”이라고 단언했다.

◇구두 손질-관리하는 법

1. 때빼기천(때보루)은 질이 좋은 융단이 좋다.

2. 일회용 약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다음에 광내기 힘들므로.

3. 집에서 광낼 때는 스타킹 속에 스펀지를 넣은뒤 구두약에 물을 약간 묻혀 닦는다.

4. 구두냄새는 구두 속에 동전 두세개를 넣거나 레몬즙으로 구두 속을 닦으면 사라진다.

5. 비에 젖은 구두는 마른 헝겊으로 물기를 닦은 뒤 구두 속에 신문지를 뭉쳐 넣어 습기를 빨아 내고 모양을 잡아준다. 직사광선이나 난로, 드라이어로 말리지 말 것. 3,4일 충분히 말려야 가죽이 부드럽게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 다음 구두약으로 닦는다.

6. 두세켤레를 번갈아 신는 것이 발에도 좋고 가죽도 숨쉴 수 있어 좋다.

7. '새 구두를 신으면 으레 발이 아픈 법'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이는 발과 신발의 '전쟁'일 뿐이다. 발에 맞는 것을 신어야 발도 건강해진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 관련기사

[구두로 보는 세상]테헤란로의 현을회-김은섬씨 부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