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國寶시인' 서정주 "조국이여, 안녕…"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8시 57분


《‘한국 문단의 거목’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85)가 금명간 영구히 한국을 떠난다. 10일 아내를 여의고 돌봐줄 이 없어진 그가 내주중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랠리시 큰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문단에서는 오랜 노환에 시달려온 그가 연고자도 없는 한국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 미당의 미국행을 ‘국보(國寶) 유출’로 받아들이며 아쉬워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 마을에 있는 미당의 자택 봉산산방(蓬q山房)에는 큰며느리가 출국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가족들은 25일 전화통화에서 “아버님께서 원기를 회복하시는 대로 두 아들이 이민 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가실 예정이며 한국일은 완전히 정리하실 것”이라고 말해 미당의 미국행이 사실상 영구출국임을 시사했다.

미당의 제자들은 그의 문학적 업적을 서둘러 정리하기 위해 기념 자료와 문헌을 모으고 있다.

▼"문단의 아버지가 떠나…"▼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서재에 첩첩이 쌓인 수천 권의 책과 육필 원고는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에 있는 미당문학기념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단에서는 허다한 허물에도 불구하고 시업(詩業)에 있어서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 그가 이역땅으로 떠나는 것을 커다란 손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조시인 이근배씨는 “간병해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 남아계실 수도 없지만 한국 문단의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심정이 착잡할 뿐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60여년을 동고동락한 부인 방옥숙(方玉淑)여사를 떠나보낸 충격으로 한때 위독한 상태까지 이르렀던 미당은 최근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면서 애제자 몇 명과 가까운 친척만 집에 들이고 있다.

가족들은 미국행 비행기에 ‘봉산산방’이란 글씨가 찍힌 미당의 전용 원고지를 한 보따리 실어 보낼 계획이다.

미당이 “시인은 죽을 때까지 시 쓰는 게 생명이니 건강해지면 다시 펜을 들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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