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학술회의]제3회의/"과거 청산 논의할 제도적 장치 필요"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9시 42분


▽남북화해협력시대의 한반도와 일본―일본인의 관찰(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일본 정치학회장)〓식민지배의 역사와 내전을 겪었다는 면에서 한국만큼 길고도 깊은 고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20세기를 마치는 마당에 한국인의 20세기는 ‘오랜 고난과 그 눈부신 극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일본인의 20세기는 ‘눈부신 근대화 달성과 그 비참한 오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서양권에서 최초의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20세기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많은 침략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민족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했고 고통을 안겨 주었다.

패전이후 일본은 전쟁을 후회했고 군사화하지 않아야 경제국가, 통상국가로 부흥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6·25전쟁을 계기로 경제도약의 힘을 얻었고 1975년에는 서방선진 7개국(G7)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대미 의존적 안전보장 속에서 자기결정 능력을 상실한 일본은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는 책임 있는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빠졌다.

전쟁에 대한 반성에서도 동남아 여러 국가로부터는 일본이 진심으로 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그 같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주의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그간 꾸준히 추진해 온 햇볕정책이 잘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의 경우 무력에 의해, 독일의 경우 빈사직전의 동독이 서독에 안기는 형태를 취했지만 두 경우 모두 바람직한 통일의 모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의 경우 물론 현격한 경제수준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제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며 상호협력하는 과정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등 건설적인 교류의 장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도 한국을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에 한국사람 다음으로 감동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남북의 화해를 바라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지만 대다수 일본인은 남북정상회담을 감동적으로 바라보았다.

▽남북화해협력시대의 바람직한 한국―북한―일본관계의 정립―한일 두 민족의 화해의 길을 찾아서(한상일·韓相一국민대교수)〓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두 나라는 정치 경제적으로, 최근에는 문화적으로 상호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양국의 국민감정은 아직도 ‘배일(排日)’과 ‘혐한(嫌韓)’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일 두 민족의 진정한 화해는 추상적인 호소가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과거사 문제는 남북한의 요구가 중복되는 부분이므로 일본은 이를 동시에 해결하는 길을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몇 가지 방안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우선 북―일 협상의 현안 가운데 일본인 납치문제와 핵 미사일 문제, 북송 일본인처 자유왕래 등은 북한과 일본이 최선의 협상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국이 측면 지원한다. 다음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한은 ‘과거사 정리를 위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과의 협상에 공동으로 임한다. 마지막으로 두 민족의 화해와 미래지향적인 협조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남북한과 일본 3개국은 정부와 별도로 민간차원의 ‘민족화해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같은 방안의 근본 취지는 과거청산이라는 가장 원천적인 문제를 피하고 체결된 한일조약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아 진정한 민족 간 화해를 이루자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이고 바람직한 두 민족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일본정부는 ‘조선은 둘이다’라는 인식을 버리고 한일관계와는 별도로 북―일 교섭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과거사 문제는 한민족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냉전의 산물인 한일국교정상화의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할 경우 두 민족 사이의 화해는 영원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토론〓양호민(梁好民)한림대교수는 “한상일 교수가 제시한 방안은 남북 간의 평화가 정착된 것을 전제로 하는데 아직 축배를 들기는 이르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양교수는 또 “일본이 북한에 대해 말로는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한민족이 받은 손실을 보상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일본이 북한에 대해 진정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정석(尹正錫)중앙대교수는 “얼마 전 중앙대에서 일본 가부키(歌舞伎)공연을 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양국 국민감정이 여전히 나쁘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오키베 마코토 교수도 “양국 국민감정은 걱정할 것이 못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여론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가 여론을 지배한다”며 “특히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양국 국민은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병을 당해 일본군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차기벽 성균관대명예교수는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사죄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죄를 강요하는 것이나, 마음에도 없는 사죄를 하는 것이나 모두 의미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한상일 교수가 남북이 공동으로 한일합방조약의 무효화를 일본에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일견 바람직해 보이지만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한국이 북한과 입장을 조율해 일본에 제안하는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경제문제에 대한 두 나라 학자들의 토론도 뜨거웠다.

황의각 교수는 “한국의 경제는 반도체를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의존형”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일체화한다면 국제시장에서 비교우위가 사라져 한국이 크게 불리하게 되므로 무역패턴의 차별화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는 이에 대해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나 산업이 서로 제휴하면 더욱 경쟁력이 커진다는 새로운 경제이론도 있다”며 “한국 경제는 이미 성숙했기 때문에 일본과도 경쟁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