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베테랑도 "쾅" 조심운전해야할 곳

  • 입력 2000년 7월 11일 19시 13분


지난해 10월 공덕5거리에서 사고를 냈던 H출판사 영업사원 민모씨(30)는 일을 마치고 광화문 쪽에서 공덕5거리에 진입해 만리동 쪽의 회사로 가기 위해 5거리를 지나 P턴을 시도했다. P턴을 하기 위해 진입한 이면도로는 차량들 사이로 오가는 행인들과 업소에서 내놓은 간판 및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가득찬 상태였다.

5분여 만에 빠져나와 본 도로에 진입하려다 보니 이번엔 신촌 쪽에서 광화문 방면으로 P턴을 하기 위해 3, 4차로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만나야 했다. 이 차량들을 피하려다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던 것. 1, 2차로 차량은 3, 4차로로, 3, 4차로 차량은 1, 2차로로 진입하려다 엇갈리는 이른바 ‘위빙(weaving)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민씨는 “내가 사고를 내긴 했지만 차량이 뒤엉킬 수밖에 없는 도로 구조가 문제”라면서 “내 책임이 100%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내 교통사고 잦은 곳 지점별 사고분석표’에 따르면 지난해 인명피해를 낸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시내 지점은 모두 1031곳. 25개 구(區) 평균 41개꼴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공덕5거리’(98년 172건 기록)와 ‘신촌5거리’(98년 171건 기록)는 각각 133건을 기록,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두 지점의 주된 사고원인은 좌회전 금지에 따른 P턴 때문이었다. 차량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하는 국가에서 드물게 1, 2차로는 직진, 3, 4차로는 좌회전 차선으로 정해진 시청 앞 교차로는 지난해 교통사고 발생 126건을 기록하며 ‘광장교차로’(광진구 광장동)와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한 사고다발 지역. 초행길 운전자는 물론 베테랑 운전자도‘어∼어’를 외치다 갈 길을 지나치거나 법규를 위반해 딱지를 떼이기 십상이다.

내부순환도로와 삼일고가도로가 지나느라 교차로 안에 교각 10여개가 설치돼 있는 데다 안내표지판이 복잡하게 붙어 있는 마장교차로(동대문구 용두동), 지하차도를 나가자마자 꼬리를 물고 서있는 U턴 대기 차량을 만나야 하는 천호교차로 등도 10대 사고다발 지점에 포함돼 있다.

<이동영기자>argus@donga.com

▼조급증이 문제…"황색신호땐 밟지 마세요"▼

하루 14시간 동안 체증과 사고로 몸살을 앓는 광화문 교차로에서 근무하는 서울 종로경찰서 교통지도계 진철호상경(22). 그는 “열기가 솟아오르는 한낮의 아스팔트 도로 위에 서 있으면 신발이 녹는 것 같다”며 근무의 고충을 토로했다.

1년 동안 꾸준히 광화문 교차로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가 지적하는 사고 원인은 운전자들의 ‘조급증’. “이 곳의 사고는 황색신호에도 교차로를 통과하려고 과속하는 차량들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죠.”

시청∼광화문 도로는 왕복 20차로지만 신촌 쪽에서 종로 쪽으로 가는 도로는 10차로이기 때문에 시청∼광화문 쪽 운전자들이 바라보는 교차로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아 보인다.

이 곳의 황색신호는 다른 곳보다 훨씬 긴 5초 정도지만 이를 악용하는 운전자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는 지적이다.황색신호에도 꼬리를 물고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량들로 혼잡이 시작되면 진상경의 손발은 정말 쉴 틈이 없다. 한 손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차량들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입으론 연신 호루라기를 불고 눈은 사방을 살펴야 한다. 끓어오르는 도로 위에서 근무하기 위해 진상경이 꼭 챙기는 것은 자외선차단 크림. 강한 햇볕을 받으며 근무해 자칫하면 화상을 입은 듯 살이 벌겋게 익기 때문이다. 그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고 나오면 화상까지는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영기자>argus@donga.com

▼"교차로 너무 넓으면 진행방향 찾기 힘들어"▼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대표(39)는 “10대 사고다발지점에서 교통사고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교차로 쪽으로 도로 연장해야

공덕5거리 등 교차로에 진입하면 어느쪽이 갈 길인지 알기 어렵다. 교차로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교차로가 넓어 운전자들이 정확한 방향을 알지 못한다.

각 방면의 도로를 교차로 쪽으로 연장, 교차로의 면적을 줄인다면 운전자들이 어느 방향이 목적지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사고발생을 줄일 수 있다. 좌회전이 금지돼 P턴 체계로 돼있는 대부분의 교차로 이면도로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혼잡과 사고를 부른다. 본도로뿐만 아니라 이면도로에 대한 정비는 큰돈 들이지 않는 사고 감소책이다.

■정확한 교통표지판 설치를

사고다발지역에서는 기본적인 장애물 표지판이나 방향표시조차 제대로 돼있지 않다. 일정 간격으로 방향지시 표지판이 나오고, 이것이 도로에 그려진 방향표시와 일치만 해도 사고는 줄어들 것이다.

교차로 사고예방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지하차도화와 고가도로화 등 도로의 입체화를 계획하곤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이 훨씬 적은 돈을 들이고도 사고감소에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책이다.

미국에서 방향지시가 불분명해 사고가 났다면 50% 이상은 도로관리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할 것이다. 부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안나면 오히려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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