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반기 베스트셀러]"…하지 말자"등 바꿔메시지 주효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37분


‘독자(Reader)의 시대에서 사용자(User)의 시대로’. 업계지 ‘송인소식’이 마련한 2000년 상반기 출판시장 정리 좌담회에서 참가자들이 입을 모아 지적한 ‘변화상’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이 지식이라면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정보다, 독자는 책을 읽기위해 사지만 사용자는 책을 생활필수품처럼 쓰기 위해 산다’는 것.

교보 영풍 종로 영광(부산) 대훈(대전)등 전국 10여개 대형서점이 참여하는 출판문화협회와 서점조합연합회 집계에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가 1위로 기록된 것은 이 주장에 힘을 싣는다.

약어로 ‘영·절·하’로 불리는 이 책은 인터넷공간에서 독자 상호간에 “효과가 있다, 없다”는 논전을 통해 더욱 세몰이를 한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들이 신상품을 모니터하는 것처럼 독자들이 책을 ‘써보고’ 품질을 평가하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난 초단타 매매로 매일 40만원을 번다’(청아) ‘나는 사이버 주식투자로 16억을 벌었다’(국일증권연구소) ‘인터넷비지니스.COM’(영진)등 주식, 닷컴비즈니스 실용서들이 우후죽순으로 상반기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떠올랐지만 정작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은 일종의 경제 수신(修身)서인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운전이나 컴퓨터처럼 돈 벌고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돈 없는 건 죄악이다’등을 주장한 이 책은 70년대 강남개발 붐 이래 최대규모의 경제적 계층 재편이 빚어진 2000년 한국에서 20∼40대까지 폭넓게 읽히며 돈에 대한 금욕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구체적인 목적의 실용서나 마음 다스리기에 효능있는 책들 (‘오두막편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사이에서 ‘노자와 21세기’가 부상한 의미는 무엇일까. ‘방송을 탔다’ ‘스타 김용옥의 작품이다’ 못지 않게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의 정수를 그리워함’이라는 틈새를 포착해낸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출판계의 분석이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한 책에서 독자심리를 역으로 읽어보자면 결국 ‘기존 방식으로는 공부 하지 말자, 돈 벌지 말자, 살지 말자’는 ‘바꿔’의 메시지가 주효했던 셈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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