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만찬 준비 한복려씨"음식 나누면 통일도 곧 오겠죠 "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11분


“뭘 드시겠습니까?”

“남북정상회담 남측 만찬으로 하겠습니다.”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내 궁중음식전문점 지화자(02-2269-5834)에서 곧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남북정상회담 때 각 호텔 한식부문 최고요리사 9명과 함께 만찬을 조리했던 궁중음식 연구원 한복려원장(53)은 19일 당시 코스요리를 그대로 재현해 보이면서 “똑같은 음식을 먹기 원하는 손님들을 위해 이를 상품화하겠다”고 밝혔다.

▼코스화·국제화▼

정상회담 북측 만찬과 남측 만찬의 공통점은 한식이지만 국제화한 음식이라는 점이었다.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황혜성씨의 맏딸 한씨는 황씨가 오랜 연구 끝에 전승 복원한 궁중요리를 현대감각에 맞게 코스별로 내놓았다. “궁중요리를 전세계인의 음식으로 만들려면 국제감각에 맞게 풀어가야 한다”는 이유.

이번 코스음식의 하이라이트는 신선로였다. 극적인 요소와 먹는 즐거움, 만찬의 화려함을 모두 충족시키는 메뉴라는 평. 후식 먹기 전의 마지막 코스는 김치 튀각 석류탕이 곁들여진 비빔밥상이었다. 갖가지 재료를 한데 모아 비비므로 통일을 상징할 수 있을 뿐더러 매콤한 고추장으로 비벼먹음으로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북측 만찬은 이미 테이블에 절반정도 메뉴가 차려져 있고 나머지는 코스로 나왔다. 동석했던 북한 주부 박성옥씨는 “연회료리는 화려하고 상징적 음식들”이라고 설명했다고 한씨는 전했다.

칠면조 향구이(칠면조를 튀겨 칼집을 낸 것)는 중국요리풍, 칠색송어 은지구이(송어를 은박지로 싸 구운 것)와 소고기 굴장즙(로스트 비프를 화이트소스에 머무린 것) 그리고 젖기름빵(소젖기름으로 만든 빵)은 서양풍일 정도로 북한음식도 이미 국제화했다는 것이 한씨의 인상이다.

▼북한음식의 원형▼

“북한음식은 단맛이 없고 순하기만 해 처음 심심하고 밍밍하게 느껴지지만 점점 길들여지면 뒷맛에서 진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한씨는 가장 인상깊었던 음식은 생선수정묵과 랭채(생선을 넣어 만든 묵과 전복냉채)라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궁중음식 보유자란 ‘직업의식’의 발로일까? “궁중음식에 생선에 녹말을 씌워 찜을 할 때 속이 말갛게 비치게 하는 요리로 어선이란 것이 있어요. 여기서 생선수정묵에서 수정이 바로 말갛게 비친다는 뜻이더군요.”

더구나 이 요리는 암벽위에 학이 앉은 모습을 하고 있어 화려한 연회요리로 더없이 어울렸다.

그는 북쪽에서 궁중음식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평양음식은 재료의 양을 소수점 이하까지 적어놓았을 정도로 계량화돼 있어 단체급식에도 적합하지만 맛을 보존하는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맛을 통한 통일▼

“한솥밥 먹으면 친해진다잖아요. 자주 만나 먹어야지요. 더구나 음식엔 사상이나 이념이 끼어들지 못해요. 남북교류에 걸릴 것이 없지요.”

한씨는 “남북이 음식으로서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며 “남과 북이 만났을 때 친구에게 얘기하듯 ‘밥한번 살게요’ 혹은 ‘먹고 얘기합시다’라고 말을 걸자고 제안했다. 앞으로 북한음식연구회를 만들어 북쪽음식과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북한측과 교류방법을 모색하며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한씨는 덧붙였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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