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클럽 통해본 문화코드]X세대"그래도 우린 서태지다"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47분


“아니, 보고 뽑으면 어떡해요?”

“보고뽑긴 뭘 보고뽑아. 아 우리방이니까 줘요.”

지난주 금요일 오후 4시30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E호텔 나이트클럽 J. 매주 주말이면 룸을 선점하기 위해 벌어지는 제비뽑기 풍경이다.

개장 시각은 2시간이나 남았지만 일찌감치 룸을 잡기 위해 20대후반∼30대 초반 20여명의 ‘선발대’가 몰린 것. 27개의 룸 중에서 24개는 이미 선수금 10만∼20만원씩을 내고 일주일전에 예약, 아니 반예매를 마친 상태로 남은 방 3개를 놓고 7:1이 넘는 경쟁을 기록한 것이다.

J란 간판이 서울에 생겨난지 10년. J족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을 만큼 일본 도쿄 젊은이들의 폭발적 인기를 업고 우리나라에 유입됐던 J는 이제 30대로 들어선, 199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X세대들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는 하나의 문화코드가 됐다.

▼테크노는 없다

스테이지 위로 흐르는 음악은 요즘 유행하는 귀가 째질 듯한 시끄러운 테크노나 레이브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환상속의 그대’(서태지와 아이들) ‘미녀와 야수’(DJ DOC) ‘천생연분’(솔리드) ‘사랑과 우정사이’(피노키오) 등 9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노래들이 연이어 터져나온다. DJ 하모씨는 “제일 구매력이 높은 고객층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어서”라고 이유를 댄다.

이곳 고객들의 주류는 힙합과 랩에 길들여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회사원 이 근씨(28)는 “90년대초 대학다닐 때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매력적인 것 같다. 룸살롱은 웬지 나이들어보이고 그렇다고 대학생들 가는 강남역의 나이트는 웬지 ‘싼티’나 보이는게 이곳을 찾게되는 이유”라고 말한다.

J의 10년 권세에 대해 ‘솔리드’명찰을 단 웨이터 권오현씨(32)는 “청담동에서 논현동으로, 논현동에서 다시 청담동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10년동안 초창기의 이름과 분위기를 그대로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대중음악은 청춘시절, 특히 청소년기가 끝나고 성년기로 들어선 23세 전후에 즐겨들었던 노래를 평생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홀부르크와 쉰들러의 연구결과. ‘두만강 푸른 물에…’를 가장 좋아하는 층은 그 노래를 20대 초반에 들었던 세대다. 힙합과 랩도 마찬가지. J에서 X세대는 그들의 젊은날을 만나는 것이다.

▼변하지 않아야 살아남는다

강남의 다른 나이트클럽도 이와 비슷한 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지나며 휴업과 폐업이 속출했다. 90년대 중반 ‘활황’이었던 경기에 비하면 아직도 완전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단코 벨파레 바스키아 로터스 파라파라 등 인지도 높았던 클럽들은 90년대 중반만 해도 이곳과 경쟁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채 가지않아 수시로 간판을 바꿔달며 ‘테크노텍’등으로 변화를 주었으나 결국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현재는 S호텔의 B나이트클럽 정도가 남았을 뿐.

문화평론가 하헌준씨는 “N세대들을 겨냥, 수시로 바뀌는 댄스 경향에 너무 민감하게 대처한 클럽들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있는 X세대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을 불렀던 것” 이라 분석한다.

원조격이랄 수 있는 도쿄와 홍콩의 J가 96년과 97년 잇달아 문을 닫은 것도 아이러니컬하다. 스탠딩 파티 등 새로운 유행을 앞세운 새 업소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 반면 서울뿐 아니라 부산 초량동과 미국 뉴욕, LA한인타운에서는 아직도 J의 이름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어 대조적이다.

▼서태지 세대들 보수적 놀이터

이날도 팝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을 비롯, 이름만 대면 알만한 20대 중반 이후 연예 스포츠계 스타들 5, 6명이 ‘조용히’ 놀다갔다. 그래도 아무도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대중문화연구가 조장은씨(천리안 J&J운영)는 “적어도 스테이지 위에선 모두다 ‘평등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래 유명인들과 함께 한무대에 설 수있다는 점도 X세대들을 유혹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7년 정도 이곳을 찾는다는 최정민씨(28·서강대 국제대학원1)는 “386세대보다 풍요롭고, N세대보다 경박하지 않았던 것이 예전 X세대의 본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J 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X세대들의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가장 맞아떨어졌던 곳, 팝보다는 서태지음악에 맞춰 춤을 췄던 곳이 이곳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런 정서를 계속 어루만져주는데 J가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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