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김희교교수 '민두기 스쿨' 비판 논란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학문적 일가를 이룬 거목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적 석학으로 추앙 받아 왔던 대가의 카리스마에 도전하기란 더더욱 그렇다. 한 소장학자가 그런 불문율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연세대 사학과 출신으로 중국 푸단대(復旦大)에서 중국사를 전공한 김희교교수(金希敎·광운대 사학과).

그는 최근 발간된 ‘역사비평’ 여름호에 ‘동양사 연구자들의 객관주의 신화 비판’이란 논문을 발표, 중국현대사 연구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놨다고 평가받는 고 민두기(故 閔斗基) 전 서울대 동양사학과교수와 그의 문하생으로 동양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민두기 스쿨’을 통박했다. 이 글은 민교수가 작고하기 전 완성됐다.

김교수는 먼저 ‘민두기 스쿨’의 학문적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객관주의’를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았다. 한마디로 “‘사료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고증주의나 ‘역사가는 정치가가 아니다’는 탈 정치주의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체적 사례로 ‘민두기 스쿨’의 역작인 ‘강좌 중국사’에 중국공산당에 대한 독립된 논문이 한 편도 수록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이처럼 사료의 선택과 연구 주제의 배제를 통해 공산주의를 애써 외면함으로써 불완전한 중국현대사를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민두기 스쿨’의 ‘객관주의’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면 그 ‘실체’는 무엇인가. 김교수는 반공주의에 경도된 자유주의와 폐쇄적인 엘리트주의에 ‘혐의’를 둔다.

사료부족과 시간적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 현대사 연구의 하한선을 1949년으로 설정해 성공한 중국사회주의를 배제하는 대신 민국혁명 같은 실패한 역사들을 공산당의 역사와 동등한 위치와 우위에 놓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강좌 중국사’ 시리즈가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만이 참여했고 인접 학문 전공자들 조차 ‘난수표’처럼 독해하기 힘든 난해한 글쓰기를 보여준 것은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엘리트주의적 기획”이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민두기 스쿨’ 학자들은 민교수가 작고한지 얼마 안됐다는 이유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10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중국근현대사연구회 정례발표회 말미에 가진 ‘민두기 선생 추모의 시간’에서 후학들의 반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민교수의 애제자였던 배경한(裵京漢·신라대 사학과)교수는 “민선생이 공산혁명을 폄하하기 위해 국민혁명이나 신해혁명을 주로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말년에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취추바이(瞿秋白) 평전을 통해 공산주의 운동으로 중국현대사를 조망하려 했다”고 말했다.

배교수는 “김교수의 비판을 후학들이 민선생의 업적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것을 제안하는 고언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혔다.

한편, ‘민두기 스쿨’은 고인의 49재인 25일 서울대에서 학술대회 형식의 추모모임을 연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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