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지아오 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 입력 2000년 5월 2일 14시 33분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

아버지는 목수였다. 겨우 ‘논어’를 떼고 ‘맹자’를 배울 무렵, 생계를 위해 톱을 잡아야 했다. 대학을 나온 그의 아들은 사진기자가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 덕분에 처음으로 사진기를 구경했다. 아들이 맨 처음 찍은 부모의 사진은 아버지가 톱질하는 모습, 어머니가 손자의 첫 걸음마를 떼주는 순간, 그리고 양친이 평생 처음으로 찍은 부부사진이었다.

중국 런민일보 사진기자 지아오 보. 그가 78년부터 20여년을 찍은 부모의 사진과 그들에 대한 기억을 묶은 책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뜨란)다. 부친의 연세는 올해 여든 다섯, 모친은 여든 일곱이다.

아직 젖병을 무는 아들이 열나흘째 밤마다 깨어나서 울었다. 미국으로 유학간 엄마의 자리까지 도맡아야했던 아비는 깜빡 잠이 들어도 범죄자들의 총격 한가운데 있거나 자동차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 악몽중에서도 아비는 ‘곽오주같은 사람은 되지말자’고 다짐했다. 곽오주는 갓 낳은 제 자식의 울음소리를 참지못해 내동댕이쳐 죽게 만들고 저도 실성했던 ‘임꺽정’의 주먹패.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는 엄마없는 젖먹이를 2년동안 키운 아버지 이강옥교수(영남대 국문과)의 육아일기다. 엄마는 돌아왔고 아들은 이제 만 네살이다.

중국인 아들이 쓴 ‘나의 아버지…’와 한국인 아버지가 쓴 ‘젖병을 든…’은 이렇듯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다. 허구적 상상력이나 미사여구의 개입이 없는 이 책들은 그러나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라면 삶의 어느 구비에선가 한번쯤 겪어보았을 일들, 그 공감의 힘이다.

베이징에 사느라 산뚱의 고향마을에서 늙어가는 부모를 돌보지 못해 걱정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네가 더 먼곳으로 간다고 해도 우리는 널 막지 않을 게다. 네가 첫 걸음마를 뗄 때 엄마가 어찌했는지 아니? 우리집을 대표해서 저 멀리 넓은 데로 나가서 살라고 네 발을 묶고 있던 끈을 칼로 끊어주었단다.”

나이 마흔 하나에 아들을 본 이강옥교수는 자식을 키우면서 세상 떠난 아버지 생각에 자주 눈물을 삼킨다. 가난한 농부였기에 아들의 등록금조차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했던 아버지. 아들이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자 꾹꾹 눌러 쓴 볼펜글씨로 ‘고향의 애비는 잘 있으니 너만 자중 정진하라’고 편지를 쓰고 또 썼던 아버지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뒤 홀연 세상을 떠났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이교수는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헤아린다.

‘아이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 나를 버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아무 계산없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주었다.…대를 잇는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걸어갔던 시간의 길을 자식이 이어 걸어가는 것인 줄 이제야 알겠다.’

지아오 보의 키작은 어머니는 지금도 장성한 아들이 밤늦게 길을 떠나면 대문 앞에 서서 손전등을 비춰준다. 더 이상 아들에게 불빛이 닿지 않을 때도 노모는 멀리 한 점 불빛으로 여전히 손전등을 쳐들고 있다.

세상의 철없는 자식들은 불빛도 없이 제 혼자 힘으로 밤길을 걷는 줄 알고, 그 불빛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알아차릴 때면 이미 부모가 세상에 없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는 247쪽. 7000원. 박지민 옮김.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는 283쪽. 8000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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