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스님의 '절밥'예찬]사찰음식…한술 한술에 마음 평정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6분


“스님과 함께 요리를.”

22일까지 ‘사찰요리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1층 그랑카페(02-559-7614) 주방. 여주 보리사에 있는 자그마한 몸집의 선재스님(45)이 덩치큰 20대 요리사 21명에게 요리를 가르치느라 분주하다.

“처음엔 내가 조금만 한눈을 팔면 요리사들이 약효가 빠지는 것도 모르고 미역을 물에 담가놓지 않나 김밥에 넣으려던 시금치를 파 마늘로 양념해 놓지 않나…이젠 국수에 색을 낼 때 색소가 아니라 단호박 미역 연근을 대령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게됐어요.”

선재스님은 젊은 요리사들과 요리하는 것이 즐거운 표정이다.

정영우조리부장도 “채소만으로 이처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니 서양요리를 주로 해온 우리 요리사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며 놀라워했다.

쑥콩죽 두부김밥 과일김치 고소겉절이 새송이구이 버섯탕수이 방아장떡 엄나물순튀김 연근튀김 산초장아찌 더덕잣무침 된장비빔국수 풋고추열무김치 등 40여가지가 이번 행사의 메뉴.

절밥은 왜 맛있을까.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아 정갈하고, 채소만으로 만들어 담백하기 때문. 짜고 맵고 단 음식에 길들여진 탓에 처음에는 심심할지 몰라도 곧 자연의 맛에 감동하게 된다.

무엇보다 사찰음식의 매력은 건강에 좋다는 사실. 선재스님은 “불교에서 음식은 약으로 쓰이므로 조리할 때도 약효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절에서 많이 먹는 제피는 항암에, 산초는 구충과 중풍예방에 효과가 있고 봄나물의 쓴 맛은 겨울에 쌓인 노폐물을 빠져나가게 하는 데 좋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는 설명.

“무엇보다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더 큰 효과가 있어요. 절에서는 오신채라고 해서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사용하지 않지요. 마음을 바깥으로 자꾸 치닫게 해서 평정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예요. 뚱뚱한 사람중에 파 마늘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의 평정을 잃어 스트레스를 받으니 자꾸 먹게 되지요.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는 아이는 번잡하구요.”

양산 통도사의 두릅무침과 표고밥, 합천 해인사의 상치 불뚝김치와 고수무침, 순천 송광사의 연근물김치와 죽순장아찌, 전북 금산사 돌미나리김치, 여주 신륵사 연꽃밥,오대산 상원사 취나물김치…. 유명 사찰의 전통음식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불자가 아니어도 건강식으로, 혹은 새로운 맛으로 관심을 갖는 것.

실제로 사찰음식의 비법인 죽염이나 솔잎차, 각종 죽순요리처럼 이미 대중화한 사찰음식이 한둘이 아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산촌(02-735-0312)같은 전문음식점도 성업중이고 한식집 한미리(02-556-4834)같은 음식점도 사찰음식의 영향을 받았다.

선재스님은 대학에서 ‘사찰 음식문화 연구’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사찰음식과 인연을 맺은 사찰음식의 대가. 5년전부터 불교TV의 ‘푸른맛 푸른요리’를 진행중이고 전국 방방곡곡 큰 불사엔 그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김없이 초대된다.

스님이 권하는 건강법은 소식(小食)과 채식.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다면 대신 채소를 고기의 두배이상 먹고 계란에 녹차잎을, 라면엔 된장을 넣어 삶아 아이들에게 주라는 얘기다.

그는 솔잎을 좋아했던 성철스님, 쌈과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고산스님을 떠올리며 큰스님들의 식성에 관해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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