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의 '합리적 선택' 과연 가능한가

  • 입력 2000년 3월 27일 20시 12분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 주권은 모든 인간이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실제 정치행위에서는 혈연 지역감정 성차별 관습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정치학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은 정치 행위에서 인간의 이성적(목적의식적) 선택을 정치 행위의 핵심으로 보고 이를 일반화한다. 이에 반해 역사 문화 심리 여론조사 등의 요소들에 의존해 정치행위를 연구하는 방식도 전통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정치학의 연구방법론에서 수십년 간 논란이 돼 온 이 두 경향에 대해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모리스 P 피오리나교수와 예일대 정치학과장 이언 샤피로교수의 대립적인 의견을 실어 쟁점을 검토했다.

합리적 선택이론은 투표할 후보를 선택하거나 지지할 정당을 고를 경우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치행위는 심리적 성향이나 사회적 또는 구조적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목적의식적 또는 자기의식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피오리나교수는 “개인은 그들의 지식 자산 상황 등이 허락하는 한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목적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식적 선택을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모델을 구성하고 가설들을 단순화하며 연역의 방식을 이용해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물론 피오리나교수도 “귀납적이고 경험적인 접근법을 사용하는 학자들은 때때로 합리적 선택 이론이 구체적이고 세세한 많은 것들을 간과한다고 느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1940∼50년대에는 사회학과 심리학을, 70년대에는 정치학을, 최근에는 생태학을 수용했듯이 합리적 선택 이론은 오히려 새로운 성과들을 수용하며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음 세대의 학자들은 ‘생태정치학’과 같은 틀을 만들어 새로운 합리적 선택 이론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샤피로교수는 지난 40년간 정치학에서 다른 학문을 끌어들이며 방법론에 치중해서 얻은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펼치며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는 것은 이론의 추상화를 통해 모호한 주장을 펼칠 뿐이라고 비판한다. “조금만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서술해 들어가면 합리적 선택 이론은 모순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성적 판단에 따라 투표에 참가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 데모나 캠페인 등 여러 가지 정치적 행위에 시간과 재산을 투여하는 경우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정치가의 성공이 능력이나 정확한 정보보다는 우연한 행운 또는 큰 실책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도 설명할 수 없다.

샤피로교수는 방법론 지향적인 정치학보다는 오히려 인종 문화 감성 등에 근거한 비합리적인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정치현실의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학생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문제를 제쳐두고 합리적 선택의 기술을 위주로 공부한다면 축적된 정치학 관련 지식들은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않고 추상적 이론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The New York Times’ 중 ‘Political Scientists Debate Theory of Rational Choice’ 참조.

<김형찬기자>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