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 '교수와 광인'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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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공경희 옮김/세종서적 펴냄/280쪽 8500원▼

교수와 광인…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다. 그러나 둘의 운명적 만남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편찬하는 영어 문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이 책에는 옥스퍼드사전의 제작 방법 및 역사, 책임 편집자였던 머리교수의 오직 사전만을 위한 헌신적인 삶,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 마이너의 결코 범상치 않은 삶의 얘기가 점철되어 있다.

특히 주목받는 '광인' 마이너의 삶을 쫓아가 보면, 그는 명문가의 예일대의대 출신으로서 남북전쟁에 참가하여 끔찍한 경험을 하였다. 그 후 그는 망상에 사로잡혀 급기야 살인을 저지르고 수용소에서 무려 38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는 바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릴 어휘의 용례들을 찾아보내는 일.

그 통로를 빛으로 이끌어주고 마이너를 인정해준 단 한 사람이 바로 머리 교수였다.

둘은 외모가 비슷하였을 뿐 아니라 머리 교수가 사망했을 때 이를 몰랐던 마이너가 이유없이 아프던 것 등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사이였다. 곧 '옥스퍼드 영어사전' 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이자 머리교수와 마이너의 정신적 교감의 산물이기도 한 것.

어느 도서관이든 기본 장서로서 한자리를 멋들어지게 차지하고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이 책을 읽고 난 후 사전 한 장 한 장을 들쳐보면 마이너가 수용된 폐쇄된 독방의 퀴퀴한 냄새, 머리교수의 정신없는 작업실의 풍경, 마이너가 망상에 빠져 자신의 성기를 잘랐던 순간의 외침등도 듣고 느낄 수 있다. "내가 다쳤소!" 그 순간 우리는 어느새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로 떠나 있다.

이 책의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는 저널리스트로서 저서로 <세계의 중심을 흐르는 강> <태양은 지지 않는다> 등이 있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마이너의 삶에 감동받아 이 책을 저술, 1998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책에 향기가 있다면 이 책에서는 낭만의 향기가 풍겨날 것이다. 항상 '역사 속의 실제 있었던 일'은 그 낭만적인 비밀스러움으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지 않는가. 어떤 소설보다도 진한 감동을 주는 이 책은 아마 우리를 19세기 영국에 대한 향수에 젖게 할 것이다.

이희정<동아닷컴 기자>huib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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