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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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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은 있어도 거짓말은 아니다. 그는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동아일보 주최의 43기 국수전에서 조훈현 9단을 꺾고 국수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최강 이창호 9단마저 2연패의 치욕을 당했다.
루이의 잇따른 승전보는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여성 바둑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한편 ‘성(性)과 바둑’에 관한 기존의 통념을 깨뜨렸다.
한국기원이 홈페이지에 최근 개설한 토론실에는 ‘반상(盤上)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프로기사와 바둑평론가 등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실려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 루이 9단을 배출한 중국의 여성 바둑계에는 펑윈(豊雲) 9단, 화쉐밍(華學明) 7단,예구이(葉桂) 5단 등 기라성같은 강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여성 기사로는 루이 9단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9단위에 오른 펑 9단은 97년 승단대회에서 창하오(常昊) 9단(당시 7단)을 꺾었다. 또 예5단도 98년 NEC배 신인왕전에서 왕레이(王磊) 6단, 저우허양(周鶴洋) 7단, 뤄시허(羅洗河) 6단 등 이른바 중국의 6소룡 멤버를 차례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 바둑계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이기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처럼 ‘사건’에 속하지는 않는 것이다.
문용직 4단은 중국 여성바둑의 강세를 △여성의 활동을 장려하는 중국의 사회적 분위기 △인기인에 속할 정도로 안정적인 프로기사의 직업적 위상 △활성화된 집단 연구 등을 이유로 꼽는다. 마샤오춘(馬曉春) 9단의 이혼이나 창 9단의 득남 소식이 일간지를 장식할 정도.
또 한국과 달리 여성들만의 프로 입단 대회가 없다는 점도 중국 여성바둑의 특징이다. 김승준 7단은 “중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입단의 관문 자체가 남자와 같은 조건으로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다”면서 “이런 점이 중국 여성 바둑을 강하게 하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성룡 6단은 “중국의 여성 바둑이 아니라 루이9단이 센 것”이라며 반론을 펼친다. 조혜연 2단(15)이 제1회 흥창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루이9단에게 1승2패로 아깝게 졌고 박지은 2단(17)이 조훈현 9단을 꺾는 등 한국 여성 바둑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루이9단 등 최근 여성기사들의 돌풍으로 ‘바둑은 남자가 강하다’는 통념이 무너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바둑평론가 양동환씨는 “정신적, 문화적 조건에 따라 남성이 여성보다 바둑에 적합하다는 게 지난 100년간 세계바둑을 주도해온 일본 바둑의 논리였다”면서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루이9단의 등장으로 여지없이 깨졌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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