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교포작가 뜨는 이유 있다…가족 붕괴- 갈등 공감대

  • 입력 2000년 2월 18일 19시 23분


유미리(柳美里) 현봉호(玄峰豪·필명 겐게쓰·玄月) 등 재일교포 신진작가들이 일본 문단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은 과거 재일작가들이 주로 다뤄온 ‘한국인으로서의 고뇌와 저항’이라는 정치적 테마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해 일본 독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

특히 현씨가 얼마전 ‘그늘의 집(蔭の棲みか)’이라는 작품으로 아쿠다가와(芥川)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주요 일간지와 잡지들이 앞다투어 재일작가들의 문학세계를 기획기사로 다루고 있다.

현씨의 작품은 전쟁중에 오른팔을 잃은 재일교포 독신노인이 주인공. 일본여성과의 교류, 중국인 불법취업자의 유입 등을 아시아적인 관점에서 묘사했다.

이 작품은 일본군에 배속됐던 재일교포 전상자에 대한 전후보상 등 정치적 문제도 다루고 있지만 ‘한(恨)’으로 굴절된 감정은 배제했다는 점을 평가받고 있다.

재일 한국인 2세 문예평론가인 다케다 세이지(竹田靑嗣)는 “앞 세대의 재일작가들은 재일교포로서 느끼는 불행이나 위화감에 집착해왔다. 그러나 현씨는 민족문제에서 벗어나 재일교포 실태를 담담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문학에 정통한 문예평론가 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는 재일작가를 △김사량(金史良) 김달수(金達壽) 등 제1세대 △김석범(金石範) 이회성(李恢成) 등 제2세대 △양석일(梁石日) 이양지(李良枝) 유미리 현봉호 등 제3세대로 나눈다.

제1세대는 1920년대 전후에 태어난 작가들로 일본어와 한국어가 둘다 가능한 세대. 제2세대는 의식적으로 일본어를 사용한 세대이며 제3세대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세대다.

이 가운데 ‘재일문학’의 이미지를 만들어온 것은 제2세대의 문학. 재일외국인으로서 처음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은 ‘백년의 여행자들(百年の旅人たち)’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석범도 고향인 한국 제주도에서 1948년 일어난 무장봉기를 소재로 ‘화산도(火山島)’ 등을 썼다.

이러한 재일문학의 이미지는 제3세대 들어서면서 깨졌다. 양석일은 ‘피와 뼈(血と骨)’ 등에서 ‘고뇌’나 ‘슬픔’이 아니라 ‘멋있게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력’을 묘사했다.

양석일은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인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가족시네마’로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유미리도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입장에서 가족의 붕괴나 갈등 등 보편적인 테마에 도전하고 있다.

‘재일작가’의 한계는 다치하라 마사아키(立原正秋) 미야모토 도쿠조(宮本德藏) 이주인 시즈카(伊集院靜) 등 일본명으로 활약하는 문학자들에 의해서도 무너지고 있다.

월간문예지 ‘신초(新潮)’ 2월호에 발표한 ‘해홍비(海虹妃)’라는 작품을 발표한 미야모토는 “나는 민족주의를 싫어한다. 프랑스문학을 비롯, 중국 한국 일본의 고전을 폭넓게 흡수하겠다”고 말한다.

‘해홍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 당시 짧은 생애를 마친 귀족의 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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