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간은 민주적 동물이다"… '인간사회 진화론' 화재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인간의 역사에는 수많은 독재자들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자유와 평등은 꾸준히 향상돼 왔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크리스토퍼 H. 보엠교수(인류학)는 최근 발간한 저서 ‘숲 속의 계급제도:평등주의적 행위의 진화’(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원시사회의 평등주의적 행위를 민주주의적 정치제도 형성과 연관시키는 새로운 ‘인간사회 진화론’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인간사회가 근본적으로 계층적이어서 강력한 개인에 의해 통제하기 쉽다거나 혹은 인간사회가 자연적으로 진화해서 점차 평등주의적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양자택일적 견해에 반대한다. 그는 인간사회에서 평등주의의 발전은 그 사회의 특정한 조건에 따라 일정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중도적 입장에 선다. 이는 사회에서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평등주의적’ 행위가 어떻게 발생하는가 하는 논쟁에 대한 새로운 견해다.

미국 미시간대 바바라 스머츠교수(심리학)와 북일리노이대 래리 안하트교수(정치학)는 영장류 동물학의 현장연구와 인류학 연구의 성과를 결합시킨 통합적 접근으로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전개했다는 점을 이 책의 장점으로 꼽는다.

보엠교수가 이런 방법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문화인류학자로 시작해 80년대 중반부터는 영장류 동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밑에서 현장연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고릴라와 보노보(피그미 침팬지) 연구로 영역을 확장한 보엠교수는 한 사회에서 힘이 약한 일반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함으로써 그들의 결집된 의지를 강자에게 강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 구성원들은 강자들이 함부로 힘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금기와 도덕률을 설정함으로써 평등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원의장이던 깅그리치가 권력을 휘두르며 ‘지배적’ 분위기를 자아내자 동료 의원들이 그의 콧대를 꺾으려 했던 것도 그 한 예라는 것이다.

그는 평등을 강조했던 공산주의가 급속히 확산됐던 점, 그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처럼 한 강대국의 독주가 다수의 합의를 통해 견제된다 점 등의 예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나아가 평등한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도덕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다음 저서에서 도덕의 발달 문제를 다루기 위해 뉴욕주립대 데이비드 슬로언 윌슨교수(진화생물학)와 공동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진화에 관해 수년간 발간된 저작 중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는 에모리대 브루스 크노프트교수이라는 격찬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는 문제도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인간과 침팬지가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공통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에 의존한다. 하지만 안하트교수(정치학)가 지적하듯이 인간과 다른 영장류들간의 유사성들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침팬지와 다를 수 있다.

또한 평등주의적 행위의 근거를 영장류의 공통조상으로 부터 찾기에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 비해 인간이 평등을 사회의 주요한 덕목으로 존중한 역사가 너무도 짧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나아가 과거에 했던 현장연구로부터 인간사회의 진화에 관한 가설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이를 증명하는 데는 인간사회에 대한 보다 새롭고 구체적인 현장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스머츠교수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참조-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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