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육필영인본 시집 '그날이 오면' 출간

  • 입력 2000년 1월 8일 08시 46분


일제하 계몽 작가이자 저항시인으로 활동한 심훈의 시집 ‘그날이 오면’이 육필원고 영인본(차림)으로 출간됐다.

총독부의 압력으로 작가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고, 해방 후에야 빛을 볼 수 있었던 시집. 유려한 필체의 육필원고에는 붉은 잉크로 그어댄 총독부의 검열흔적이 선명해, 일제가 이땅의 문인들에게 가한 탄압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그대여/ 조상에게 그저 받은 뼈와 살이어늘/ 남은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알몸 뿐이어늘/ 그것이 아까와 놈들 앞에 절하고 무릎을 꿇는/ 나는 ‘샤일록’보다도 더 인색한 놈이외다….’

시 ‘독백’의 한 구절. 그러나 행간의 항거정신을 읽어낸 검열당국은 붉은 잉크의 밑줄과 함께 ‘삭제’ 도장을 쾅쾅 찍어버렸다.

책의 제목을 이루는 대표시 ‘그날이 오면’은 전체에 ‘삭제’의 붉은 도장이 찍혔다. 시집 전체에 걸쳐 ‘고국’ ‘센진(鮮人)’과 같은 단어에도 어김없이 붉은 잉크 선이 그어졌다.

책 후반부에는 삭제되지 않은 시집 전체가 오늘날의 활자로 실렸다.

심훈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심훈의 3남 재호(64)씨는 “앞으로 ‘상록수’ 등 선친의 주요 친필 원고를 시리즈로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록수’의 저자로 유명한 심훈은 ‘그날’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1936년 36세에 장티푸스로 급서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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