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54)

  • 입력 1999년 6월 28일 18시 58분


사복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손바닥을 내밀고 말했다.

주민증….

나는 점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주민증을 집어내어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가 준 증명서를 앞 뒤로 뒤집어가며 자세히 살폈다. 그가 주민증을 손에 쥔 채로 내게 물었다.

집이 인천이오?

네.

직업은?

회사 나갑니다.

어느 회사?

나는 주민등록증의 원래 임자가 다니던 공장 이름을 외우고 있어서 공장과 부서와 직책까지 붙여서 말했다. 자신있게 말하고나서 그를 올려다 보았더니 그는 픽, 하고 웃음을 지었다.

헌데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없길래 시간도 늦고 해서요….

어느 집이야?

거기서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이 근첩니다.

그으래? 찾을 수 있겠구먼. 저거 당신 짐이지? 가지구 나와.

왜 그러쇼? 여관에서 잠두 못잡니까?

사복은 빙글대며 웃기만 하고 정복의 순경이 말했다.

잠깐이면 됩니다. 조회를 해봐야 하니까 좀 갑시다.

나는 보스턴 백을 달랑 들고 그들이 앞장세운대로 여관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마자 사복이 나의 점퍼 아래로 손을 넣어 궁둥이쪽의 혁대를 움켜쥐었다.

어어 이거 왜 이래요?

좀 실례 하자구. 자네가 달아나면 우린 귀찮단 말야.

그들은 나를 데리고 길을 건너서 지서까지 데리고 갔다. 사복은 아직도 내 혁대를 움켜쥔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를 지서의 뒤편에 있는 작은 보호실로 데려갔다. 그는 나를 안으로 밀어 넣고 걸쇠를 잠그면서 철창 너머로 씽긋 웃어 보였다.

난 말야, 아주 이상한 코를 가졌다구. 너 잠수함인 줄 다 알구 있어. 조회해보면 금방 알게 될 거야.

나는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앉을 수도 없어서 철창 앞에 엉거주춤 서있었다.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는 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묻은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드디어 긴 여행을 끝마칠 때가 되었다. 나는 검거되었다.

바깥 쪽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갔던 사내가 돌아왔다. 그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꺼내어 다짜고짜로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작정했으므로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이거 왜이래?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이래두 되는 거야?

개새끼, 죽구 싶어?

그가 내 아랫배를 질렀는데 갑자기 명치 끝까지 숨이 막히면서 도무지 맥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허리를꺾으면서주저앉았고그가내손목에 수갑을 채우고는 목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허 그새끼 되게 엄살 부리네.

창문도 없이 철창뿐인 곳에 있어서 몰랐지만 밖은 벌써 훤하게 밝아 있었다. 본서에서 나온 마이크로 버스 한 대가 지서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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