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조용훈/이중섭의 엽서그림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08분


눈부신 오월만큼 쪽빛 바다와 유채꽃이 빛나는 제주. 제주는 늘 아름답다. 일제 통치 하에서도, 6·25전쟁 때도 그랬다. 그러나 전쟁은 서귀포의 화가 이중섭의 순결한 영혼을 맘껏 유린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일본인 아내, 그리고 전쟁과 피란. 그의 고난은 이렇게 험악했다. 그가 전쟁의 칼날을 피해 제주의 풍광 속으로 가족을 이끌고 들어갔을 때 거센 눈보라는 일진광풍으로 그들의 걸음마저 잔인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제주의 시릴 듯한 바다에서도 그는 가족과 함께라면 행복할 수 있었다. 1951년은 그랬다. 그러나 전쟁은 끝내 가족마저 찢어 놓았다. 아내는 아들 둘을 데리고 대한해협을 건너갔다.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피처럼 쏟아내며 오열했다. 이 그림처럼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서 꿈에도 그리던 가족과의 상봉을 동화처럼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으로 엽서에 토해냈다.

김춘수는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아내가 두고 간/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바람아 네가 있을 뿐’(‘이중섭’중)이라며 이중섭의 통절한 심정을 대변했다.

조용훈(청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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