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서정인 창작집 「베네치아서 만난 사람」

  • 입력 1999년 1월 26일 19시 10분


작가 서정인이 94년 ‘붕어’ 이후 5년만에 창작집을 냈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작가정신).

여기 실린 5편의 중단편은 독특하다. 주인공들의 대화만 온통 가득하다. 지문도 구어체다. 연작 ‘무자년의 가을 사흘’을 제외하면 특별한 줄거리도 없다. 표제작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대화로 이뤄져있다.

빼어난 단편작가로 평가받는 서정인이 대화,구어체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화 구어체, 즉 인간의 말과 소리야말로 인간의 삶에 가장 밀착된 것이라는 그의 문학관 때문이다. 일상의 대화는 사소해보이지만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데 유효한 문학적 장치다.

‘무자년의 가을 사흘’은 작가의 10대 시절을 회상해본 자전적 연작 소설. 해방공간과 6·25라는 시대적 아픔과 곤궁한 삶을 그리고 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있지만 작가가 중점을 둔 것은 살아있는 대화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그 대화 속으로 빨려들어가다 보면 그 시대의 궁핍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습으로 펼쳐진다.

또한 지문인지 대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구어체 화법을 통해 왜곡되고 비틀린 삶의 한 단면을 능청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대화 구어체가 시대의 풍자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표제작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은 거의가 주인공의 대화다. 소설은 유럽 여행 중에 만난 남녀의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작가의 개입없이 펼쳐지는 주인공의 대화는 바로 일상이고 현실이다.

서정인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진리이며 사물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문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의 이름을,삶의 진실을 제대로 불러줄 수 있는 것이 그의 대화체 구어체이다. 즉 인간의 말과 소리다. 작가가 함부로 개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욱 현실에 가깝다. 그래서 평자들은 그를 ‘말과 소리의 리얼리스트’라고 부른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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