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환자들 헛소문에 운다…기증약속자들 잇단 철회

  • 입력 1998년 11월 29일 20시 07분


‘골수를 기증해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국내의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골수기증자를 구하지 못해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백혈병을 치료하려면 다른 사람의 골수이식이 필수적이나 지난해부터 골수기증 등록자들이 대부분 기증의사를 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골수기증 기피현상은 지난해 9월7일 일부 언론이 ‘성덕바우만에게 골수를 이식해준 서한국씨(25·충남 공주시 계룡면)가 후유증으로 척추디스크를 앓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비롯됐다. 미국 공군사관학교 생도였던 성덕바우만의 건강상태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이 보도의 파장은 의외로 컸다. 골수기증 등록자들이 기증의사를 철회하는 사례가 속출한 것.

대한적십자사에 골수기증 의사를 밝힌 1만7천여명의 등록자 중 올 4월까지 8개월 동안 수술을 허락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서씨의 척추디스크는 골수이식 수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적 지병이었다.

당시 서씨를 진료했던 충북 음성성모병원 양진수(楊鎭秀)신경외과과장은 “척추는 골수를 채취하는 골반과 관련이 없는 부위”라며 “서씨의 척추디스크는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행히 올 7,8월부터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11월 현재 골수기증 등록자들의 수술승낙률은 여전히 30% 미만이다.

둘째딸(19)이 2년째 백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배모씨(52·서울 양천구)는 “골수이식을 하면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5월 골수은행을 통해 백혈구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았으나 수술을 거부당했다”며 “날로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발생하는 백혈병 환자는 3천5백∼3천8백명. 이중 항암치료로 완치가 안돼 골수이식이 꼭 필요한 환자는 2천여명이다.

대한적십자사에 골수 기증자로 등록한 사람은 현재 1만7천2백여명. 유전자형이 일치할 확률이 약 30%인 점을 감안할 때 승낙률이 100%만 된다면 상당수 백혈병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아주대병원 혈액종양내과 남동기(南棟基)교수는 “골수기증자는 수술후 사흘이면 정상생활이 가능하고 2∼4주가 지나면 골수세포가 완전 복원돼 축구 농구까지 즐길 수 있다”며 “내가 수술한 30여명의 기증자 중 후유증으로 고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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