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 원룸텔]1.5평속의 「완전한 자유」

  • 입력 1998년 8월 13일 19시 30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여성전용 주거공간 ‘아이비스텔’. 입주자 김은경씨(25)의 최근 생일 파티. 각각 원룸에 사는 여성들이 초대받아 공동 응접실에 모였다. 잠옷 바람, 반바지 차림, 막 샤워를 마친 머릿결 등 모두들 편안한 복장과 모습.

“여자끼리라 썰렁하긴 하지만 즐겁게 마셔보자구! 건배”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에 분홍빛 커튼이 인상적인 이곳은 ‘금남(禁男)의 집’. 오후 9시부터는 외부인 출입금지. 총 30여명의 미혼 여성이 ‘마음껏’ 홀로 살고 있다.

각자 이용하는 1.5평의 원룸에는 TV 전화 냉장고 책상 침대 등이 놓여 있어 이삿짐없이 몸만 와서 생활한다. 보증금없이 35만원 가량의 월세만 내기 때문에 언제든 전세금 분쟁없이 떠날 수 있다. 원룸과 호텔의 개념을 합친 여성 전용 주거시설 ‘원룸텔’. (문의 02-3437-0753)

원룸은 주위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 게다가 이성의 거추장스런 시선도 없다. K모피 홍보실에 근무하는 김선경씨(25). “처음엔 공동샤워실에 출입할 때 문을 잠그곤 했죠.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곳은 또한 독립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맞춤인 공간. M부동산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이모씨(38). “결혼할 나이가 지나자 집에서 ‘시집가라’는 성화에 지쳐 독립하기로 결심했죠. 자취를 하다보니 주위의 시선도 곱지 않고 ‘왜 혼자사느냐’는 수군거림도 많았죠. 그런 눈총을 받지 않으니 편합니다.”

최근의 한 조사결과 부모로부터 독립해 사는 미혼여성은 29%.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여성을 겨냥한 소규모 여성전용 원룸텔이 서울 강남의 방배동 논현동 양재동 등 사무실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번창하고 있다.

빨간 벽돌로 지은 강남구 신사동 ‘꿈의 궁전’과 공항 근처의 하늘색 ‘스튜어디스 전용’은 화려한 원색으로 시선을 끈다. 여성전용은 IMF체제와는 별 상관없이 부동산 인기상품이란 것이 업계의 설명.

▼현대판 아마조네스,우먼피아▼

여성전용공간은 카페 극장 만화방 백화점주차장 헬스클럽 컴퓨터통신 금연학교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달 오픈하는 경기 성남시 분당의 ‘레이디스 휘트니스 클럽’은 헬스클럽뿐 아니라 노래방, 레스토랑까지 5층 전체가 여성전용. 클럽 관계자는 “남녀공용의 경우 여성은 구석에서 운동해야 했지만 전용공간에서는 다리를 마음껏 벌릴 수 있고 여성만을 위한 몸매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잇점”이라고 설명.

신한종합연구소 홍성훈(31) 주임연구원. “여성 전용공간은 여성 내면의 욕구를 ‘이성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해소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공간이다”.

천리안과 하이텔의 ‘여성클럽’ ‘여성학동호회’ 등은 컴퓨터 통신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적인 희롱을 피하기 위한 여성전용 대화방. 정회원이 되려면 논술시험 문제같은 자기소개서부터 심지어는 전화통화, 오프라인(면대면)모임에 나가 ‘스무고개’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문화예술 기획의 이혜경대표. “여성의 자유로운 욕구충족을 위해 당분간은 ‘폐쇄적’ 공간이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개방된 곳에서도 이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여성전용 공간은 상업적 목적도 추구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참여를 향한 중간단계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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