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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19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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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현빈의 창단작품 ‘선택’은 그 주사위를 던져본 실험이다. 굿을 연극에 풀어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선택’의 경우 연극 속에 굿 형식 일부를 빌려왔다기 보다 굿 속에서 연극이 노니는 것이 다르다.
이문열의 동명(同名)소설을 원작으로 한 ‘선택’이 택한 형식은 원혼을 달래 극락길로 인도한다는 지노귀굿. 만신이 4백년전 죽은 장씨부인의 혼령을 불러내는 ‘조상거리’로 시작한다.
“처음 소설 ‘선택’을 읽어보니 서양 연극의 방법론으로 풀면 강의식 모노드라마밖에는 안 되겠더군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내쳐두었는데 펀뜻 굿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대본도 쓰고 극중에서 만신(여자무당)으로 주역도 맡은 이용이의 설명. 그는 극단 민예와 미추를 거쳐 우리 가락과 춤사위를 배웠고 경기민요를 15년째 공부하고 있다.
극중 좋은 어머니회와 후손들의 부름을 받고 20세기로 불려나온 4백년전 안동 양반가 안주인 장씨부인은 “여인으로서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양육”이라며 자신이 아이 기른 도(道)를 후손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원작이 지난해 시끌벅쩍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소설이라거나 여성의 가치를 지나치게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인정에만 제한했다는 시비거리는 굿판이 시작되면 이내 잊혀지고 만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객석에서 조용히 구경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굿판으로 불려나가 “술 따라라” “향 피워라” “춤 춰라”는 혼백의 지시에 따르고 제수떡을 나누어 먹으며 자연스레 극의 주인이 되어간다.
극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 이들은 장고 징 피리 해금 등을 능숙하게 연주하며 만신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산받이역의 공호석 김영화 강선숙 강성숙. 민예, 미추 등에서 현대극 뿐만 아니라 전통 소리와 악기를 갈고 닦아온 배우들이다.
“열린 형식인 굿을 통해 놀이와 연극, 무대와 객석이 어울리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무대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카페나 야외마당 등 여러 곳에 마당을 펼쳐보려 합니다.”
극중 저승사자역을 맡은 기획자 김일우(극단 현빈 대표)의 포부다.
공연은 22일까지 학전 블루. 토 오후4시반 7시반 일 오후3시 6시. 월 오후 7시반. 02―763―8233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