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사회심리학 下]축구전술로 본 세가정의 삶

  • 입력 1998년 6월 8일 19시 43분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가정운용전술과 월드컵의 축구전술. 개인기로 각자 포지션에 충실한 브라질 축구.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전원공격 전원수비’ 토털사커(Total Soccer)의 네덜란드. 테크닉과 체력의 열세를 딛고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융통성 축구’의 한국. 각기 다른 축구스타일을 원용하고 있는 세집안의 ‘가족경쟁력’.》

[브라질형]

▼주전멤버〓박영득(아버지·64·개인택시운전사·서울 창동)/송순범(어머니·59·주부)/박상민(아들·28·조흥은행 의정부지점)

▼작전〓복잡한 세상일수록 부부유별, 부자유친!

▼우리집은…〓아버지 박씨는 해놓은 밥과 반찬도 스스로 차려 먹은 기억이 없다. 방금 한 따끈따끈한 밥이 아니면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은 반드시 집에서 먹는다. 대신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마지노선인 하루 8만원 이상의 ‘매상’을 올리지 못하면 절대 귀가하지 않는다./고교동창회와 계모임이 유일한 사회활동인 어머니 송씨는 결혼 35년 동안 저녁상을 제때 차려내지 못한 적이 딱 다섯번. 몸져 누워도 밥은 해놓고 ‘나머지 시간에’ 앓는다. 아들이 술먹고 새벽 3,4시에 들어와도 밖에서 열쇠로 현관문을 열지 못하도록 삼중으로 걸어 잠근 뒤 아들이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절대로 자지 않는다. “아들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혼을 내야 잠이 온다”./나이 서른이 되도록 밥짓기와 청소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들 상민씨. 대신 저녁상에선 그날 직장에서 있었던 얘기며 애인과의 다툼 등 모든 것을 ‘보고’. “아침에 아버지가 닦아준 구두와 어머니가 다려준 와이셔츠로 ‘무장’하고 출근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의 포지션은 회사에 충실하는 것.

[한국형]

▼주전멤버〓김용달(아버지·63·서울 청량리 태양공인중개사대표)/박정자(어머니·52·청량리중앙교회집사)/김대중(28·한국외국어대 법학과 대학원)/김소중 남중(쌍둥이 형제·26·서울 송파동 해변조개구이집 공동사장)

▼작전〓힘든 세상엔 5인6각(五人六脚)!

▼우리집은…〓어머니 박씨는 집안살림을 전담하면서도 아침 설거지가 끝나면 남편의 사무실로 출근.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가옥대장 등 관련서류를 남편 대신 발급받으러 뛰어다닌다. 10여년간 교회집사로 있으면서 ‘넓어진 발’로 전세나 주택매매 계약을 하려는 손님들을 남편에 소개하기도./아버지 김씨는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쌍둥이 아들들이 운영하는 조개구이집으로 간다. 아버지는 널려있는 조개껍데기 청소를, 어머니는 설겆이를 맡는다. 지인(知人)과의 만남이나 식사를 아들의 가게에서 하기 위해 노력./조개구이집에서 동생 남중씨는 활발한 성격탓에 손님접대를, 차분한 형 소중씨는 주방과 돈관리를 맡는다. 수익금의 일부를 큰형 대중씨의 책값으로 제공./사법고시준비 중인 장남 대중씨는 집안의 브레인. 조개구이집 개장도 “경기가 안좋을 땐 역시 먹는 장사가 최고지만 인테리어 등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그의 제언을 따른 것.

[네덜란드형]

▼주전멤버〓이상헌(아버지·58·세종대 역사학과교수)/이경자(어머니·54·신연중학교 영어교사)/이현선(아들·27·서울대 철학과 대학원·대입논술모의고사 채점으로 용돈 조달)/이현아(딸·25·부산방직공업㈜ 디자이너)

▼작전〓바쁜 세상엔 팔방미인의 자급자족!

▼우리집은…〓출근도 알아서, 퇴근도 알아서. 밥을 일일이 챙겨줄 수 없어 어머니 이씨는 출근전 하루치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밥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나간다. 각자 꺼내 먹는 건 자유지만 설거지는 필수. 자생력을 키우다 보니 아버지 이씨는 ‘생선구이의 달인’, 아들 현선씨는 ‘비빔밥 도사’가 됐다는 자평. 한명이 온종일 집에 있을 때는 아침에 한번 차린 식탁을 저녁까지 한번도 치우지 않고 계속 벌여놓는 ‘요령사태’가 간혹 발생. 그러나 “구성원 모두 자생력이 있어 어머니가 아프거나 여행을 떠나도 가정의 기본기능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자랑./어머니 이씨는 “학교 회의나 회식 때문에 밤늦게 귀가해도 안심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각자 벌어 각자 쓰고 각자 저축. 대신 식기세척기 같은 ‘가사 인프라’에는 공동투자. 영리한 진도개 ‘다롱이’를 길러 ‘낮에는 빈집’ 컴플렉스를 보완.

〈이승재기자〉sjda@dn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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