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의 아버지들]「IMF」 이후 가정의 변화

  • 입력 1998년 5월 3일 19시 56분


“이사할 때 이삿짐 트럭에 맨먼저 올라타는 게 강아지하고 남편이라잖아요. 버려두고 떠날까봐. 요새 집에서 제 신세가 그래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가 머리맡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꿀에 잰 인삼을 티스푼으로 먹여줘요. 마땅히 나갈 곳도 없는데 아들놈은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놓고요.”

지난달 29일 용산가족공원에서 만난 실직한 두 아버지. 집안에서의 정반대 위상을 말해주는 이들의 얘기는 요즘 급속히 이뤄지고 있는 상반된 방향으로의 가정내 권력이동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한편에선 고개숙인 아버지에게 힘을 주려는 가족들의 편지보내기 운동이 줄을 잇고 동시에 한편에선 집을 떠나 방황하는 아버지들이 늘고 있는 추세.

서강대 사회학과 조옥라교수는 “IMF시대를 맞아 한국의 가정에서 상반된 적응형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계속되는 설명. “한계상황에 부닥치면 일상 속에 잠복해 있던 각 가정의 내적 충실도가 수면 위로 급부상한다. 부부간 평등도가 높았다고 볼 수 있는 모(母)중심적 가정은 어머니의 역할이 더 커지고 가족해체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가부장적인 전통적 가족이념이 강했던 가정은 가족이 아버지의 역할을 더욱 강화시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평소 가족간의 상호관계가 긴밀하지 못했던 가정은 한계상황에 부닥치면 해체위기를 맞을 수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어지면서 그야말로 팽(烹)돼버리는 아버지도 생기는 것이다.”

사실 경제능력과 아버지의 힘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조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가족을 먹여살리는 비율이 훨씬 높은 도시빈민층 가정에서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중산층가정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남성의전화 이옥소장은 “처음 실직했을 때는 위로해주던 가족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무시한다고 호소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며 “평소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시하고 대화가 없었던 가정일수록 실직후 3, 4개월 즈음에 나타날 수 있는 가정해체의 고비가 더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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