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무너진다 中]버려지는 노인-아이들

  • 입력 1998년 4월 30일 20시 08분


‘IMF궁핍’으로 어른 모시는 자세도 흔들리고 있다.

효(孝)와 자애(慈愛),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가족 위아래의 일차적인 유대도 어두운 경제의 그림자속에 함몰하고 있다. 지난 시절 가족단위로 손잡고 어려움을 헤쳐왔던 한국 가정의 ‘한솥밥’정서가 경제난과 함께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 2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큰 아들과 함께 지내던 김모씨(76). 사업이 기울자 자식이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버려진’ 신세가 돼 버렸다.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양모씨(78) 역시 지난해 말 사업에 실패한 큰 아들이 가출해 버린뒤 며느리마저 집을 나가 졸지에 ‘홀몸’이 됐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노인과 아들 손자가 함께 사는 경우는75년의 78.2%에서96년에는 28.8%, 혼자사는 노인은 7.0%에서 53.1%로 늘었다. 이같은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연금을 받는 이는 1.5%정도.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朴在侃)소장은 “현재 노인들은 자녀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며 “최근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4%가 점심을 굶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응렬(金應烈)교수는 “사회구성원들이 노인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공동복지비용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도 노인들 못지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일대 아동보호시설은 최근 ‘맡겨진 아이들’로 넘쳐난다.

지난달 28일 안양아동상담소에 수용된 박모양(4)은 지난해 10월 아버지가 실직한 뒤 올들어 어머니가 가출해 이곳에 ‘맡겨졌다’. 박양의 언니와 남동생은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심양금(沈良今·53)소장은 “박양의 아버지가 3,4년 뒤 아이를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이를 다시 찾아가는 부모는 한 명도 없었고 10명에 3명 정도만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 아이의 안부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지난해 한달 평균 30여명에서 올들어 50여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부모가 직접 데려와 맡기는 경우가 전체의 30%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80% 이상으로 늘어났다.

서울시립아동상담소에도 아이를 맡기겠다는 상담건수가 지난해 한달 평균 2백50여건에서 올해 4백여건으로 증가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李勳求)교수는 “어린이들의 심리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실직한 사실은 알려주되 자녀앞에서 낙담하거나 가정이 어렵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현두·이명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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