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는 낙원 「작은 티베트」그린 「오래된 미래」

  • 입력 1998년 3월 27일 08시 10분


거대한 코끼리의 가죽 같은 황무지에 눈부신 초록색 에메랄드처럼 오아시스가 빛나는 ‘작은 티베트’ 라다크.

눈 덮인 산꼭대기들은 조용히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그 아래 초지에는 푸른 양과 늑대, 숨어사는 눈표범이 맑은 눈을 깜박인다. 포도주빛 가파른 돌담들을 따라 반달 모양의 골짜기를 내려오면 마을 여기 저기에선 화분에 담긴 금잔화가 밝은 오렌지 빛으로 타오르고….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슨하게 흘러간다. 시간을 나타내는 말들은 감미롭기만 하다. ‘해가 어두워진 다음에’(공그로트), ‘해가 산꼭대기에 걸리면’(니체), ‘해 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시간에’(치페―치리트)….

이들은 많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경작할 수 있는 만큼만 갖는다. 그래서 라다크 마을 사람들은 땅의 크기를 ‘하루’ ‘이틀’로 나타낸다. 땅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잰다.

여자들의 커다란, 아무 거리낌 없는 미소가 인상적이다. 남자와 여자의 이름에 구분이 없다. ‘코’라는 대명사 하나로 남녀를 동시에 가리킨다.

그들에게 물어보라. 남자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무엇을 따지는지, 이곳에서도 얼굴이 예쁜지 어떤지가 그렇게 중요한지.

“문제는 내면이 어떤가예요. 성품이 더 중요하지요. 라다크에 이런 말이 있어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펴낸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사회학 생태학의 고전적 필독서.

천년이 넘게 티베트 불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온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저자는 16년간의 현지체험을 바탕으로 그 유서깊은 공동체의 생명력과 ‘근대화 과정’을 분석한다.

저자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전염성이 강한 그들의 웃음에 감염되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가 말한 대로 그들의 진정한 종교는 ‘친절’이었다.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가 생활 속에 배어 있는. 그들은 ‘개별적인 존재의 경계가 사라져 버리면 너와 나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한몸의 다른 면일 뿐’이라는 ‘공(空)’의 자비심을 타고 났다.

그런 라다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몰려와 개발이 시작됐다.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은 갑자기 ‘가난해졌다’.

새로운 기술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간격이 커졌다. 자동차를 타고 휙, 달려가는 사람들은 걸어가는 이들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먼지속’에 남겨두고 떠나게 마련이다.

개발은 불만과 탐욕을 자극한다. 아니, 탐욕의 ‘확대 재생산’이 변화의 훨씬 더 본질적인 부분인지 모른다. 81년 라다크 개발관은 이런 말을 했다.

“라다크를 개발하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지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을 움직일 수 없다….”

저자는 라다크의 개발을 처참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청동항아리가 분홍색 플라스틱 양동이로 바뀌고, 야크털 신발이 버려지고 값싼 현대적 신발이 환영받는 광경은 끔찍했다.

자신의 뜰에서 키운 감자를 먹는 것보다 지구 저편에서 키워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려서 만든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어야 하다니….

문명이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띤다. 그런데도 유럽의 농업전문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에서 씨앗을 수입하기 전에 어떤 채소를 먹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들은 채소를 먹지 않았습니다. 단지 잡초를 먹었지요….”

서구문화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또 너무나 강력해서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렸다. 자신을 비교해 볼 타자(他者)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 뿐인가? 과거는 항시 나빴던가? 새로운 기술은 변덕스러운 날씨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과학적 발명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야만 하는가?

개발은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키고 숲과 다양한 생물과 문화를 죽이고 있다. 파괴의 규모와 속도가 이렇게 컸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시간은 더 이상 우리편이 아니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먼저 위기의 체계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종적 폭력, 물과 공기의 오염, 가족의 와해, 문화적 해체…. 이 모든 것들은 그물의 코처럼 서로 얽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접점(接點)’을 찾아 거대한 그물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가닥을 잡아당겨야만 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과 지구 사이에 본래부터 존재해온 ‘오래된’ 유대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올바른 미래는 어쩌면 아주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상 수천년 동안 존재해왔던 가치, 자연질서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 우리 서로서로의, 그리고 우리와 지구 사이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알아보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오래된’, 바로 그것이다….”

<호지 지음/녹색평론사 펴냄>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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