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는 아내 『한번 참으면 평생 당한다』

  • 입력 1998년 2월 23일 19시 49분


“나는 남편의 못된 구타 버릇을 이렇게 고쳤다.” 동아일보취재진은 바로 이렇게 얘기해주는 여성을 찾고자 뛰었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현명하게 대응, 평등한 가정을 되찾은 사례를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가정폭력에 고통받는 수많은 아내들에게 길잡이가 됐으면 해서. 그러나 불행히도 성공사례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해마다 수천건씩의 가정폭력을 접해온 여성단체 상담원들도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은 아내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맞고 견딜 수는 없는 일. ‘한번 이상 맞은 경험이 있는 주부가 전체의 40%, 그중 10%는 심각한 상습적 구타 피해자.’(보건복지부 통계) ‘칼로 물베기’가 결코 아닌 가정폭력.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초기에 단호하게〓고교졸업 후 중매결혼한 남편에게 30년째 매를 맞아온 박모씨(50). “홧김에 실수했거니 하며 신혼초 남편의 손찌검을 참고 견딘게 잘못”이라며 회한의 한숨을 내쉰다. 결혼 1개월 후 술취한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머리채를 잡힌 게 시작. 구타후엔 꼭 강요된 잠자리. 다른 사람들에겐 ‘예의바른 인간성 좋은 남자’로 평가받는 남편. “혹 나에게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자책하며 인내해온 세월. 그러나 남편은 외도를 일삼아왔고 매맞으며 지켜온 가정은 결국 파탄지경. 서울성폭력상담센터 박연숙부장. “처음 폭행을 당했을 때 단호히 대응하지 못하면 평생 맞게 될 수 있다. 한번 용인하면 습관이 돼 점점 정도가 심해진다. 진단서, 비용이 부담스러우면 치료확인서라도 떼어놓아야 한다. ‘홧김에 그랬기로서니 진단서까지?’라며 남편이 트집잡을 수 있겠지만 강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반드시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를 받아야 한다.” ▼반복되는 구타, 혼자선 풀 수 없다〓대학원조교였던 남편과 결혼한 이모씨(32). 한달에 2,3번씩 주기적인 남편의 마구잡이 구타. 자존심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못한 채 그저 식탁밑에 숨곤 했다. 서울여성의전화 박은실간사. “남편의 구타가 반복되면 아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난 것이다. 즉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친정식구 친구 이웃 경찰 여성단체 등에 도움을 청하고 시댁에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사람임을 알려야 한다.” ▼내 인생을 생각하라〓석사학위를 가진 남편과 살고 있는 이모씨(34). “매맞기 싫으면 나가라”고 고함치던 남편. 막상 이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이혼하면 애들은 다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협박. 인고의 나날. 성폭력상담센터 박부장. “많은 여성이 가정, 특히 아이 걱정 때문에 폭력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매맞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난 아들이 폭력남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내 아들이 폭력남편이 될 수 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도 ‘10년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라. 이혼이 능사는 아니지만 무작정 참고 맞는 것은 더 큰 불행을 부를 뿐이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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