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빠 최고]곤충박사 최경환씨

  • 입력 1998년 1월 5일 20시 49분


“우리 아빠는 곤충박사라서요. 친구들이 참 부러워해요.” 큰딸 은비(경기초등 4학년)가 아빠 자랑을 시작하며 며칠전 장수풍뎅이랑 사슴벌레랑 싸운 얘기를 들려준다. “장수풍뎅이가 짝짓기하는 것도 봤어요. 짝짓기할 때 고추도 나와요.” 슬비(경기초등 1학년)도 질세라 설명을 거들고 나선다. 막내 민영이(5)도 누나들 얘기에 한마디씩 참견하며 퍽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은비네 집. 삼남매와 아빠 최경환씨(42·곤충세계 대표) 엄마 이인숙씨(36)말고도 이집엔 사시사철 딴 식구들이 제법 많이 산다. 거실 한쪽에 층층이 쌓여있는 플라스틱 상자에는 풍뎅이 사슴벌레 딱정벌레가 제각기 자리를 잡았다. 옆 상자는 누에 새우 두꺼비 차지다. 마당에는 풍뎅이애벌레들이 짚더미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냉장고 속마저 호랑나비 번데기와 누에알들이 점거했다. 바깥 기온이 너무 낮을까봐 배려해준 까닭. 이쯤 되고 보면 은비 외할머니처럼 들를 때마다 ‘뭔가 찜찜해’할 법도 하지만 은비네는 전혀 아랑곳 않는다. 서울 근교에 작은 비닐하우스까지 임대해 곤충을 기른다. 곤충과의 인연의 시작은 5년전 봄. 아빠 최씨가 앞산에 올랐다가 나뭇잎에 새똥같은 게 슬슬 움직이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집으로 가져왔다. 그 ‘새똥’이 어느날 호랑나비로 날아오를 줄이야. 최씨는 그 충격에 곧장 나비 풍뎅이 개미들을 잔뜩 구해와 본격적인 관찰을 시작했고 아이들도 신나했다.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개미만 봐도 질겁했지만 그는 연구소를 찾고 밤늦도록 외국 곤충책까지 들여다보는 등 여간 열심이 아니었다. 고치벌에게 나비애벌레들이 떼죽음당하는 사건도 겪었지만 곤충 식구들은 하나둘씩 늘어만 갔다. “곤충을 기르면서 아이들 성격이 많이 좋아졌어요. 작은 생물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죠. 살살 만져가면서 벌레랑 노니까 손놀림도 섬세해졌고요. 느낌도 풍부하고 표현도 다양해졌어요.” 아빠의 아이들 자랑도 끝이 없다. 호랑나비와 부전나비, 네발나비와 아기세줄나비를 척척 구별해내는 아이들은 곤충들 먹이도 잘 주고 물뿌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방학탐구과제며 관찰일기숙제도 걱정없다. 한번은 반 친구들 전부에게 달팽이를 나눠준 적도 있다. 아이들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최씨는 이젠 아예 집에서 곤충기르기 세트를 만들어 유치원이나 가정에 판매한다. 여름겨울방학때는 단체주문이 밀리지만 주문량은 들쭉날쭉. 그동안 TV회전받침대 사업으로 모은 돈을 까먹는 생활이다. 그래도 그는 곤충기르기 세트를 사간 아이들이 매일같이 “풍뎅이는 어디로 숨을 쉬어요” “달팽이는 뭘 잘 먹어요”라고 물어대는 전화가 즐겁다. 아들딸이 붙여준 ‘곤충박사’란 별명이 여전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비가 날아오면 “아빠, 나비 왔어”라고 반가워하고 꿀 먹을 땐 조용히 하라고 하고 날아가면 섭섭해하고. 그는 그런 아이들이 좋다. 그렇게만 자란다면 마음이 아주 착해질 것 같다. 〈윤경은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