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으로 논의 대상에 오른 작품은 ‘녹슨 기억의 철길’(천은영) ‘앵속’(백성우) ‘낮쥐’(이영주) ‘수수바람’(조은성) ‘비어있는 방’(최인) 다섯 편이었다.
그 중에서 ‘녹슨 기억의 철길’은 소외된 땅으로 흘러다니는 소외된 인물들의 떠돌이 삶을 주정적인 유려한 문장과 치밀한 구성으로 그렸지만 지나치게 감성과 직관에만 의존해 인물들의 비극성을 현실적인 삶과 너무 유리된 위치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앵속’은 ‘양귀비’를 화해의 상징으로 적절히 이용하고 있으면서 긴장감있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잘 끌어가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나 인물관계의 필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일단 아깝게 제외됐다.
‘낮쥐’는 식량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의 우리 민족문제를 새끼쥐를 향한 어미쥐의 집요한 사랑으로 형상화하고 있고, 쥐와의 대결을 통한 화자의 내면갈등을 좋은 문장으로 집요하게 추적하여 인상적이었으나 주제의식을 강조한 나머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그려진 인물의 문제가 결함으로 지적됐다.
‘비어있는 방’은 욕망이 끝없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소비사회의 경쟁구도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부숴져가는지를 밀도있는 문장과 재치가 번뜩이는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인데, 철저한 객관묘사인데도 큰 무리가 없이 화자의 내면풍경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 또 주인물의 위치가 특정한 위치라기보다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광고문안들부터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다양한 소도구들이 적절히 이용되고 있다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아 당선작으로 뽑는데 이의가 없었다.
<박완서·박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