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 국내 유명화가의 위작시비가 일었다. 일부에서 과학적 분석을 요구했으나 기계가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억대의 돈을 들여 주사형 전자현미경을 구입했다.
이 현미경이 있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은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오르는 「수술대」. 20만배율의 현미경, 안료분석기, X선과 자외선투사기, 각종 화학시설….
현대미술관의 강정식보존과학담당관(59)은 최근 집단 수술을 실시했다. 현대미술관측이 근대미술의 도입과 전개과정을 살피기 위해 마련한 「근대를 보는 눈」전(내년 3월10일까지)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한곳에 모인 2백80점은 많은 상처를 갖고 있었다. 찢어지고 변색되고 먼지와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창고에 처박히고 응접실에서 담배연기와 습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결과다. 강담당관은 몇개월에 걸쳐 훼손이 심한 26점을 매만졌다.
『X선은 작품의 붓터치와 지지체의 상태, 자외선은 사용된 니스의 성질, 보형, 덧칠의 흔적을 알게 해줍니다. 적외선은 밑그림을 밝혀줍니다. 여기에 재료의 화학적 성질을 분석해 때를 벗기고 원상태로 돌려놓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미술품 보존전문가. 80년부터 이 일을 해왔다. 국내에는 아직도 정규 교육기관이 없다. 일본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배우던 그는 79년 82년 86년 세차례에 걸쳐 도쿄예대 등에서 재료분석학 보존환경학을 공부했다.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자화상(1915년)을 원상태로 돌려놓은 것을 가장 큰 기억으로 꼽는다.
미술품의 국제보존기준은 18도안팎의 온도에 55%의 습도. 그는 『70∼80년 주기로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며 『작품에 손을 대면 더 훼손된다는 막연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보존작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격한 치유원칙을 지니고 있다. 작품의 원상태를 되살릴뿐 추가채색 등 재창조는 금물이다. 접착제 사용연료 등은 언제든 다시 지우고 떼어낼 수 있어야 하고 작품에 영향을 주어선 안된다. 『첨단과학은 인간감성의 총화인 예술작품을 치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일 뿐입니다. 위대한 예술 그 자체를 재생할 수는 없지요』
〈이원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