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부여군청앞 네거리에 이르면 백제의 명장 계백(階伯·?∼660)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백제멸망 직전인 의자왕 20년 김유신(金庾信) 소정방(蘇定方) 등을 앞세운 나당연합군 18만여명이 백제의 요충지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진격해오자 황산벌(논산 연산)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인 용장(勇將). 그는 특히 5천명의 결사대로 10배가 넘는 신라군 5만여명과 대치해 어린 화랑 관창(官昌)을 생포했다 놓아주는 관대함까지 보이며 네차례나 승리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해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 묻혔다.
계백장군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 처자의 목을 쳤다는 일화는 우국충정의 일편단심을 대표하는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동상은 63년 처음으로 이곳에 세워졌으나 형상과 규모가 작아 장군의 위풍을 잘 나타내지 못한다는 여론에 따라 79년 현재의 모습대로 다시 만들어졌다.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가 동상비문을 썼으며 김세중 전서울대교수가 제작을 맡았다. 좌대높이는 5m, 동상높이는 3m.
비문의 내용은 이렇다.
「백제의 큰 충신 장군은 나당연합군 18만명이 물밀듯 쳐들어왔을 때 겨우 5천군사로 황산벌에서 대결, 네차례나 적을 물리쳤으나 적은 군사로 대병을 당할 수는 없었다. 슬프다!살은 다하고 칼은 부러져 장군은 마지막 붉은 피를 장엄하게 황산벌에 뿌렸다. 천고에 빛나는 장군의 충혼을 추모한다」.
〈부여〓지명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