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월일 전세계 배포」라고 광고된 음반이 우리나라에서는 한달이나 두달 뒤에야 음반점 진열대를 장식한다. 세계 6∼8위권 규모로 평가되는 우리나라 클래식음반계의 현주소다.
발매가 늦어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심의제도 때문. 새로 발매되는 음반은 지난 10월 발족된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에 작곡가 작사가의 국적, 수록곡 제목, 가사를 제출해 심의를 거친 뒤 배포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성악곡은 가사가 들어가므로 늑장발매의 주역이 되기 쉽다. 가사심의를 한국어 또는 영어로만 받도록 규정됐기 때문에 가사가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제3국어로 쓰여진 오페라나 가곡의 경우 음반사가 시간과 돈을 들여 번역을 의뢰하는 수고도 감수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작품 다른 연주」의 처리문제. 만약 한 음반사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음반을 생산하기 위해 심의를 통과한 뒤 한달 뒤 연주자만 달리해 같은 작품의 음반을 들여올 경우 이 음반사는 심의를 다시 거치기 위해 한두달을 허비해야 한다.
물론 작사 작곡자와 수록곡 제목은 완전히 동일하다. 세계적으로 「카르멘」 초연 이후 작품의 내용을 문제삼아 공연이나 음반배포가 금지됐던 사례는 알려진 일이 없다.
공연예술진흥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심의위원들이 가사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한국어 또는 영어가사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연주자가 다를 경우 다른 내용의 음반으로 간주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