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취업 현장]명퇴 남편대신 나선 취업전선

  • 입력 1997년 10월 23일 19시 40분


취업의 계절. 취업박람회마다 돌아다니며 지원서를 구하려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길기만 하다. 그 뒤편에선 30,40대 주부들이 새로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불황 감원 명예퇴직 등의 여파다. 남편(37)이 다니는 회사가 최근 심한 자금압박에 처해 두달째 월급이 안나온다는 C씨(35·서울 홍제동)는 이달부터 S화재보험 여의도지점의 생활설계사로 나섰다. 『교육받을 때는 「나도 할 수 있다」, 「또 다른 삶을 찾아보자」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네요. 여동생에게 자동차보험을 가입하라고 했더니 이미 시누이한테 가입했대요. 친구들도 동정섞인 반응만 보여요』 집안에서 애들 교육과 살림살이에만 몰두한 지 10∼20년. 당장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가장 손쉽게 여기는 것은 보험 생활설계사다. 학력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기 때문. 교보생명의 경우 생활설계사는 작년 8월 4만1천여명에서 올8월에는 4만8천명으로 무려 7천명 늘었다. 대부분 「내 손으로 벌어보자」고 집밖으로 나선 주부들. 매달 2천여명이 중도하차하고 그 이상의 숫자가 새로 나선다. 모 생명보험의 서울 시내 한 영업소에 있는 15명의 생활설계사 가운데 13명은 남편이 명퇴하거나 남편의 직장생활에 불안을 느껴 대신 취업한 주부들이다. K생명 생활설계사 K씨(45·여)는 23일 아침에도 「힘내자! 힘내자!」구호를 외친 뒤 영업소 문을 나섰다. 생활설계사로 나선지 다섯달째. 남편은 작년에 대기업 영업부장에서 명퇴했다. 퇴직금으로 건축사업에 손을 댔다가 1억원 가량을 홀랑 날렸다. 지난달 연금보험 4건을 계약한 대가로 80만원을 받아들고 눈물이 솟구쳤다. 주부 M씨(38)는 남편이 기울어가는 회사에서 뛰쳐나오는 통에 친정언니와 함께 커피숍 겸 호프집을 차렸다. 과거 운좋게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알토란같이 모아뒀던 1억원으로 떼밀리다시피 이른바 「창업」을 했다.그러나 매일밤 자정무렵까지 기다려도 손님의 발길은 뜸하다. 어린이용 교재를 구입한 가정을 직접 방문해 공부를 돕는 Y씨(35)도 남편회사가 부도를 내는 통에 취업전선에 뛰어든 케이스. 『10년 넘게 가정만 지키다가 일을 하게되니 새롭기도 해요. 그렇지만 10여군데 가정을 방문한 뒤 밤9시가 넘어 집에 돌아가는 처지가 돼버렸어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가슴이 막히죠』 부도위기에서 화의를 신청한 진로그룹의 한 직원은 『동료 가운데는 부인이 보험사 또는 다단계 판매회사에 나가거나 체인사업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윤희상·이명재·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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