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어를 사랑한다.
쟁반 위에 얇디얇게 저며진 연어의 붉은 살과 앵두 모양의 말랑말랑한 알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연어의 뛰어난 기억력과 잘 발달된 후각을 사랑한다.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오기 위해 연어는 남대천의 물결소리와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먼 바다의 성깔 못된 파도는 연어의 기억을 물어뜯으려고 덤벼들었을 것이고 연어잡이배의 촘촘한 그물은 기세도 등등하게 길을 막았을 것이다.그러나 연어는 돌아온다. 한마리 두마리가 아니다. 수백 수천마리가 떼를 지어 돌아온다.
민족이 국가로, 국가가 지역으로, 지역이 가족으로, 가족이 개인으로 쪼개지고 갈라서는 인간들을 비웃으며 돌아온다. 그 연어 공동체는 남북분단도 지역감정도 모른다. 집단 이기주의는 더더구나 없다. 오직 온 힘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 그리하여 죽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연어의 일생은 가히 「문학적」이라 할 만하다.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 보겠다는 욕심으로 나는 펜을 들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연어에 대한 정보는 상식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연어의 생태를 우선 세밀하게 그리겠다는 의도가 상상력을 자꾸 끌어내리기도 하였다. 연어뿐만 아니라 물고기가 나온다는 책과 비디오라면 무엇이든 구해보았지만 책을 낼 때까지 나는 내 눈으로 살아 있는 연어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누군가 백화점 식품부에서 연어를 판다고 해 달려가봤더니 유감스럽게도 좌판에는 알래스카산 연어가 토막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그러다 작년 가을 나는 양양 남대천으로 갔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연어떼의 거뭇거뭇한 등지느러미.
연어는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내수면 연구소가 쳐놓은 그물속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목숨을 건 연어의 기나긴 회유와 안착을.
그리고 이내 닥쳐올 죽음과 그 죽음끝에 열리게 될 눈부신 생명의 잔치를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안도현(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