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자작나무 펴냄)
최근 「베스트셀러 시장」의 미스터리 2제(題).
올해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 이 책은 왜 처음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푸른숲)로 선을 보였을 때 그토록 반응이 밋밋했을까.
출간 석달만에 8쇄를 찍은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자작나무). 14세기 중세, 스페인의 한 왕족에 의해 씌어진 「처세서」가 6백∼7백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새삼스레 지금, 이곳에서 읽히는 이유는 뭘까.
미스터리에는 추측과 짐작이 무성하게 마련. 「…101가지 이야기」의 성공은 「울림」이 있는 제목에힘입은바크다고 한다. 영혼과 「닭고기 수프」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는 독자를 모으기 어려웠으리라는 얘기다.
그러면 「선과 악…」의 비결은? 스페인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불후의 고전이 세기말의 저잣거리에서 「처세교범」으로 읽히는 이유는 뭔가.
출판계에서는 마음 정신 수양 명상류 서적의 「4년 주기설」을 이야기한다.
「배꼽」(장원),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진선), 「세상을 보는 지혜」(둥지) 등등, 짤막짤막한 잠언 경구집 붐에 이어 이번에는 스토리의 외양을 띤 명상류의 문예부흥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
「류시화 신드롬」은 그 단적인 예. 그가 번역한 「…101가지 이야기」와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가 서점가를 흔들고 있다.
이런 경향을 기민하게 포착한게 「선과 악…」. 우리들에게 생소한 스페인 문학권에서, 그것도 중세의 고전에서 「우리시대의 취향」을 읽어낸 발빠른 출판감각이 이 책을 탄생시켰다.
이 책의 원제는 「루카노르 백작」. 50편의 우화를 모은 후안 마누엘의 대표작으로 스페인은 물론 유럽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안데르센의 「발가벗은 임금님」, 세르반테스의 「기적의 제단」이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인생교범 도덕교범으로는 특이하게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알폰소 현왕(賢王)의 조카로 젊어서부터 정치와 전쟁에 참여해온 마누엘의 정치적 현실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더러 시치미 떼기, 의뭉스러움, 심지어 교활함의 「힘」을 속삭이기도 한다.
혼탁한 시대에는 오히려 단순 질박한 삶의 지침이 상큼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번에 Ⅲ권이 출간된 「선과 악…」은 5월 Ⅰ, Ⅱ권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 올랐고 지난달부터 상위권에 자리잡았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인생의 선배」를 잃어버린 젊은층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쉽고 간결한 문체가 젊은이들의 일회적이고 평면적인 기호와 맞물리는것 같다』고 풀이한다.
언뜻 이솝우화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한토막.
「거짓나무에게 생긴 일」. 거짓과 진실이 나무를 한 그루 심기로 했다. 거짓이 제안했다. 「나무를 반반씩 나누어 관리하자」고. 거짓은 뿌리야말로 나무의 생명이니 진실이 갖고, 이제 겨우 움이 튼 가지만을 자신이 갖겠다고 했다.
진실은 뿌리에서 살기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갔다.나무가 성장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자 사람들이 거짓에게로 몰려들었다. 진실은 땅 속에 파묻혀 소리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진실은 너무 배가 고파 뿌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마침내 뿌리를 잃은 나무는 열매를 맺기도 전에,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쓰러지고 말았다.
「거짓은 화려한 외양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나 진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이 없는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