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후원 회상의 열차(下)]「콜호스」부회장 발레리金

  • 입력 1997년 9월 22일 20시 05분


『우즈베크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합니다. 강제이주 초기 갈대밭과 황무지에 고려인들이 내려서자 밀과 양고기를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참담한 심경에서 벗어난 할아버지는 불모지를 논밭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우즈베크 사람들도 벼농사에 능숙합니다』 타슈켄트 인근 농장 「김병화콜호스」의 부회장 발레리 김(51)은 이 농장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가 사는 콜호스는 한국의 도시 근교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뜨락에는 상추와 파를 가꾸는 채마밭과 함께 고추 말리는 평상과 닭장이 놓여 있었다. 승용차와 가스레인지도 있었다. 그는 『윤택한 오늘이 있기까지 윗대의 희생이 컸다』고 말했다. 농업혁명의 영웅 김병화가 그 희생의 큰 몫을 맡았다. 김병화콜호스의 초기 구성원들은 강제이주 이전 연해주에서 「극성(極星)콜호스」를 꾸려나갔던 고려인들. 그때의 협업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이들은 이주 초기 김병화를 구심점으로 소련 집단농업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영농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주 직후 3백만평의 황무지에 사방으로 물길을 놓아 밀 면화 옥수수와 벼이삭이 출렁이는 옥토로 만들었다. 김병화는 2차대전 기간에 최고 수준의 후방 식량지원을 한 공로로 「이중(二重)노력영웅」이 되었다. 현재 이 콜호스는 1천1백만평으로 넓어져 연간 목화만 3천t을 수확한다. 발레리 김은 『우리 농장 외에도 폴리토젤 콜호스, 프라우다 콜호스, 우즈베크 콜호스 등 고려인들이 흘러든 국영농장에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콜호스들은 소련이 해체되면서 곤경에 처해 있다. 발레리 김은 『그러나 이같은 역경은 어느때고 있었던 것』이라며 『농장의 청장년들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까지 건너가 「원정농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슈켄트〓권기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