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양 엄마 한영희씨 『이런 비극은 다시 없어야…』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자식을 키우는 세상의 모든 엄마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다시는 이땅에 나리와 같은 불행한 유괴사건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13일 오전 박초롱초롱빛나리양(8)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강남병원 영안실 주위는 밤새 내린 비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전날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억누르며 싸늘한 시체로 변해 돌아온 나리양을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가 부검 과정을 지켜본 뒤 이 병원 영안실에 딸을 잠시 쉬게 한 어머니 한영희(韓英熙·41)씨.

눈물마저 말라버린 한씨는 뜬눈으로 「비탄의 밤」을 지샌 뒤 이날 오전 혼절한 듯 잠시 누웠다가 몸을 추스르고나서 나리양을 자신의 딸처럼 걱정해준 모든 엄마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찢어지는 이 마음 아시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토록 예쁜 딸, 아직도 줄 사랑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는 딸아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못난 엄마의 마음을…』

한씨는 펜을 들 기운조차 없어 구술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며 말을 이었다.

『캄캄한 지하방에서 목이 졸려 숨져 가면서 우리 나리는 얼마나 애타게 엄마를 찾았을까요.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불 속으로도 뛰어들겠다고 매일 밤 기도하던 엄마는 그 딸의 고통조차 알지 못한 채 집만 지키고 있었어요』

소중한 아기의 심장 박동을 자신의 뱃속에서 열달 동안 느껴본 엄마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한씨의 자책(自責)이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그 자책의 끝은 소중한 어린 생명을 2천만원에 맞바꾸려 했던 험악한 세상에 대한 한탄으로 이어졌다.

『언니 없이 홀로 남은 나리의 동생(6·유치원생)은 앞으로 어떻게 키우죠. 학원도 보내지 말고 초등학교에 입학도 시키지 말고 집에 데리고만 있어야 하나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치자 한씨의 눈물샘은 다시 터졌으나 그는 곧 마음을 추스르며 유괴 범죄의 근절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경찰에 공개수사를 요청하기 전 나리 아빠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의논 끝에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유괴 범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제2, 제3의 나리가 다신 나와선 안된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우리 나리가 짊어지고 간 십자가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씨 부부는 이날 나리양을 화장한 뒤 지난 여름방학 때 나리양이 가족과 함께 즐거운 휴가를 보냈던 대천해수욕장으로 유골을 품고 가 서해바다 수평선 너머로 멀리 나리양을 떠나 보냈다.

『그동안 나리를 찾기 위해 애써주신 이웃주민과 경찰, 그리고 전국에서 나리의 생환을 기원해준 국민에게 감사드립니다. 나리 사건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내 자식뿐 아니라 주위의 모든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리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테니까요』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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