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주부들]수서사회복지관 8명의 선생님

  • 입력 1997년 8월 18일 07시 29분


남을 돕는데 인색한 요즘 작은 능력으로나마 힘껏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는 주부들이 있다. 서울 수서동 수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무보수로 주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주부강사 8명이 그들. 60년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남편직장관계로,혹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외국에서도 생활한 경험이 있는 강남주부들이다. 강사 민기남씨(대치동)가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94년 늦가을. 평소 고학력 여성들의 잠재력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김인숙관장이 민씨에게 주부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93년 가을부터 이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무의탁노인 급식식당에서 설거지봉사를 하고 있었던 것. 그는 영문과 동기모임에서 김관장의 제의를 전했다. 동기생중 3명이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고 싶다며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주부영어교실이 문을 열었다. 처음 주부강사들은 생활수준이 높다는 강남지역에서 누가 못배운 사실을 털어놓으며 영어를 배울까하는 염려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주부들이 몰려들었다. 어려서는 가난해 배우지 못했고 커서는 생활의 여유가 생겼으나 성인에게 영어를 기초부터 가르쳐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 중학생 아들이 영어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피한다는 한 40대초반의 주부. 서울 한복판에 있는 피자집 앞에서 딸애와 만나기로 했는데 간판이 영어로 쓰여 있는 바람에 찾지 못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50대. 크레디트카드를 발급받는데 영문이름을 쓰라고 해 당황했다는 30대. 주부영어교실은 알파벳기초부터 중학교 3년까지의 과정을 4단계로 나눠 주 2회 4개월 과정으로 강의하고 있다. 한반은 15∼20명. 수강료는 월 2만5천원. 수강료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프로그램에 사용된다. 강사는 외국에 거주했던 주부들까지 합류해 8명으로 늘었다. 강사 박정순씨(포이동)는 가요 「소양강처녀」를 영어가사로 바꿔 주부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정도의 열성파. 또 다른 강사 유은숙씨(삼성동)는 『시간내기가 어려울 때는 결강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가도 출석부르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열심히 영어를 배우는 주부학생들의 얼굴이 떠오르면 다시 교재를 들고 복지관으로 향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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