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동아일보 1만호 발행…어린이 친구 「33년나이테」

  • 입력 1997년 7월 4일 20시 01분


정상의 어린이신문 소년동아일보가 5일 지령(紙齡) 1만호를 맞았다. 현재 발행부수 40만부인 소년동아일보는 지난 64년 7월15일 창간이래 33년간 어린이들의 다정한 친구로 커왔다.

창간당시 1주일에 두차례 8면 타블로이드판으로 출발한 소년동아일보는 이듬해부터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발행체제로 바뀌었다. 타블로이드판에서 현재의 크기로 바뀐 것은 78년 3월2일.

해외소식 학습문제 만화 등 다채로운 면으로 구성된 소년동아일보는 창간 한달만에 무려 10만부의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어린이 문화」 산파역 70년대 초등학생 당시 소년동아일보의 애독자였다는 주부 李美貞(이미정·30·대구 수성구 범어동)씨는 『소년동아일보에 실린 학습문제와 퀴즈, 특히 「소년 007」 등 연재만화는 많은 급우들이 돌려가며 읽었다』며 『소년동아일보는 당시 어린이신문중 가장 인기가 높아 소년동아 명예기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회상했다.

소년동아일보는 특히 가정형편이 불우한 어린이와 오지 벽지 학교를 위해 많은 사업을 벌여왔다. 창간후 첫 어린이 사업으로 서울과 농촌지역 학교의 결연을 추진하는 「나란히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당시 서울 재동국민학교 어린이들이 학용품을 걷어 혼혈아 특수학교인 서울 영화국민학교와 전교생의 절반이상이 점심을 굶던 서울 언주국민학교에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운동은 80년대 초까지 장장 16년간 계속되면서 제주도 백령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산됐다.

67년에는 교가가 없는 두메산골과 외딴 섬 국민학교에 「교가 지어주기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의 결과 10년동안 3백41개 학교에 교가가 생겼다. 78년8월에는 「해외교포들에게 조국의 얼을 심어주자」는 뜻에서 우리글로 된 책을 보내는 「국제나란히문고운동」을 벌여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시를 시작으로 캐나다 프랑스 서독 대만 일본 등 6개국에 문고를 설치했다.

소년동아일보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어린이스포츠 활성화에도 눈을 돌려 굵직굵직한 스포츠대회를 잇따라 주최했다. 65년9월 우리나라 최초로 대한배구협회와 함께 「맹호기쟁탈 전국국민학교배구대회」를 열었고 69년에는 「백곰기쟁탈 전국국민학교 스케이팅대회」와 「백마기쟁탈 서울시내국민학교 배구춘계연맹전」을 주최했다.

또 내일의 과학자와 예술가를 꿈꾸는 어린이들의 축제 「전국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와 「어린이 문예상」을 79년에 열기 시작, 지금까지 계속 주최하고 있다.

95년에는 일제식민지배의 잔재인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뀐후 「초등학교 문패달아주기운동」을 벌여 전국 76개 학교 1백90여개의 문패를 바꿔주었다.

이밖에 「일요새싹학교」 「다함께 동요부르기운동」 「전국학생미술대회」 등 어린이문화활동을 폭넓게 지원해왔다.

지령 1만호를 맞은 소년동아일보는 「21세기 정보화와 세계화를 선도하는 어린이신문으로 거듭난다」는 새로운 다짐아래 지난4월부터 매주 1회 컴퓨터 등 정보화관련 지면을 꾸미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 국내 소년지중 최초로 PC통신 천리안과 유니텔에 기사를 제공, 매월 5천8백시간 이상의 조회를 기록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다양한 축하행사 마련 1만호를 기록하는 5일부터 마이다스 동아일보에 인터넷홈페이지도 개설했다.

全萬吉(전만길)소년동아일보 부국장은 『요즘 어린이들은 급우를 친구보다는 경쟁자로 생각, 동심과 우정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며 『앞으로 유익한 정보제공은 물론 서로 아끼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되찾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소년동아일보는 1만호 기념사업으로 오는 17일 한국아마추어로켓협회와 공동으로 서울 문창초등학교운동장과 보라매공원에서 「온가족 과학한마당」을 열며 10일부터는 한빛청소년선교회와 「웃어른공경 편지쓰기운동」을 펼친다.

또 4일 시작돼 8월22일까지 계속되는 로열런던 서커스단 내한공연에 어린이 2백명을 초대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한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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