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경, 그리고 세상의 절반인 여성. 이 모두를 아우르는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생태여성론)이 21세기 새로운 대안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혼돈과 모색이 교차하는 세기말, 당대 화두의 두 축인 환경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만남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이다.
이 에코페미니즘이 과연 우리의 세계를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인가. 70년대후반 등장한 에코페미니즘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호주 등 서구에서는 새로운 대안이론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인도 등 제삼세계에서도 그 깃발이 내걸린지 이미 오래다. 국제여성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연대도 활발하다. 국내엔 여성중심의 환경운동이 조직화되기 시작한 90년대초 상륙, 빠른 속도로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우선 여성의 억압과 자연(환경)의 위기는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가부장사회에서 그동안 여성은 남성에 의해 억압당해왔고 자연은 인간에 의해 파괴돼 왔다. 여성〓자연, 남성〓문명이라는 등식이다. 여성과 환경문제는 남성중심사회의 동일한 억압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즘은 남성과 인간을 타도하려 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이 원래 하나라고 보고 이들의 어울림과 균형을 통한 모든 생명체의 통합을 강조한다.
한국 에코페미니즘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의 문순홍박사(현재 호주 멜버른대학 포스트닥터과정)는 『자본주의에서의 여성파괴와 자연파괴에 주목,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거시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안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최근 경향을 설명했다.
한국여성개발원의 김양희연구원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인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 문명을 이해하는 방식 등에 있어 발상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이다.
에코페미니즘은 국내의 기존 환경운동과 페미니즘 대한 반성이자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환경운동은 그동안 「환경보호」라는 구호에 집착, 단속과 법적 제재 등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또 다른 억압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생명의 가치를 고양하는, 생명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최근의 환경논의들이 곧 에코페미니즘의 생명화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경우도 마찬가지. 기존의 페미니즘도 지극히 정치적이고 극단적 운동논리에 지배돼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에코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성으로 남성과 여성의 평등과 조화, 자연과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체의 공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탈정치적 탈이데올로기적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이 시대의 가장 민감하면서도 본질적인 여성과 환경문제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전세계 지성의 눈길이 쏠려있다.
〈이광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