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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14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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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기에 출전하기 앞서 이봉주는 부인 김미순씨의 뱃속에 있는 5개월된 2세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다는 꼬마 자동차의 모험을 그린 만화영화 ‘꼬마 자동차 붕붕’의 주제가다.
아시아경기대회 2연패에 도전하는 남편을 위해 김씨는 전날 열차편으로 부산에 내려왔다. 혹시 부담이 될까 몇 번인가 망설이다 전화를 건 그에게 남편은 뜻밖에도 노래를 불러주었다. 김씨는 “평소에도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그 사람 취미”라고는 했지만 경기를 앞두고 태평하게 노래를 부를 줄이야….
남편은 태연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래서 김씨는 선수들이 출발한 오후 3시 숨듯이 관중석 구석에 앉아 대형전광판을 통해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남편의 경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말 그대로 ‘석고상’이 됐다. 무릎위에 올려 놓은 가방을 꼭 쥔 채 목을 쏙 빼고 전광판만을 응시했다. 곁의 친구들은 가끔 웃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김씨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20㎞ 지점을 지나 이봉주가 다른 선수들을 훨씬 앞서 달리고 있는데도 김씨 얼굴에 서린 긴장감은 가시지 않았다. 너무도 긴 2시간여. 이봉주가 골인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환호 속에 김씨의 얼굴도 비로소 펴졌다. 가장 고독한 경기라는 마라톤. 이날 이봉주는 결코 혼자 달린 것이 아니었다.
부산〓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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