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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15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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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공격계획을 보면서 그것이 한국의 12월 대선에 미칠 영향이 궁금해졌다. 공격 준비에 최소한 1개월에서 2, 3개월이 걸린다고 하니 전쟁은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우리는 미국의 전폭기들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초토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후보들의 유세를 듣고 투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은 어떤 양상을 띨까.
우선 이라크 전쟁 지원문제가 최대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지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어느 정도 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는 물론 주요 대선 후보들도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강력한 지원 의사를 밝힌 후보에게 더 호감을 가질 것이다. 전투병을 보내겠다고 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엎드려 큰절이라도 할 것이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우리와 함께 서 있다. 바로 그 점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부시 대통령이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보낸 찬사다. 쿠데타로 집권했고, 지난달에는 헌법을 29군데나 고쳐 장기 집권의 길을 연 무샤라프 대통령이다. 그런 그를 비난하기는커녕 고마워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상대적으로 우파 성향이 더 강한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 한미관계가 한국 외교의 근간이라고 믿는 우리 사회 주류의 생각과도 배치되지 않아 외교적으로 안정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위험 부담도 따른다. 전투병 파병을 포함한 지나친 지원 약속은 반미(反美) 감정을 자극할 수 있고 선거 후에도 두고두고 족쇄가 될 수 있다. 전쟁으로 유가(油價)가 급등해 경제 사정이라도 악화된다면 지원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이 끝내 유엔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단독으로 공격에 나설 경우 사정은 더 복잡해진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해도 우리는 오로지 미국만 따라가면 되는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원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후보가 반드시 유리할 것 같지도 않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전략의 하나다. 미국과의 사이가 불편하면 남북관계도 잘 풀리지 않음을 우리는 이 정권에서 보았다. 대선 후보라면 마땅히 선거 후의 한미관계까지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후보들의 외교적 감각과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이 난제 앞에서 누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아마 새 정권의 한미관계는 그 답에 의해 많은 부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남북관계와 국내정치로 파급되면서 전형적인 연계의 한 패턴을 보여줄 것이다.
결정에는 고통이 따른다. 월남전 파병을 결정하면서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담배 재떨이를 9개나 비웠다는 일화가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해상봉쇄령을 내리게 됐을 때 뺨에 댄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는 기록도 있다.
결정은 후보들의 몫이지만 그것이 미칠 영향은 실로 크다. 전쟁을 하든, 협상을 하든 줄을 서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긴 해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후보들의 용기와 지혜를 보고 싶다.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