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막스 카스/ 獨총선 ´미국식 정치´에 오염

  • 입력 2002년 9월 11일 18시 42분


22일 치러질 독일 연방하원 총선은 독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되는 선거다. 90년대 말 이후 서유럽 좌파들이 거의 모두 권력을 잃은 가운데 독일이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보루로 남을지 아니면 보수 우파의 시대적 조류를 확인시켜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그리고 그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투명하다. 독일 정치는 과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1949년 8월 18일 실시된 독일 최초의 연방의회 총선 투표율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은 편(78.5%)이었다.

10여개의 정당과 무소속 당선자들이 난립함으로써 내각 수립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부동층 급격히 늘어 예측불허▼

결국 기민·기사연합(CDU-CSU)이 자민당(FDP)과 연정을 하는 정부가 구성되었고 기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가 초대 총리가 됐다.

당시 36개의 정당들은 차츰 줄어들기 시작해 53년에는 연방의회를 구성하는 정당이 몇몇 소수로 압축됐다. 이 같은 집중화 현상은 53년 도입돼 57년 강화된 ‘5%조항’과도 연관이 있다.

5%조항이란 정당에 투표하는 제2기표 가운데 5% 이상을 얻었거나 후보 개인에 투표하는 제1기표 가운데 3명 이상의 의원을 당선시킨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961년부터 1980년까지 서독 정당 시스템은 3당체제였다. CDU-CSU, 사민당(SPD), 그리고 셋 중 가장 약하지만 집권 정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해온 FDP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1983년 좌파성향 환경보호 이념의 녹색당이 5%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하면서 4당체제로 바뀌게 된다.

1990년 독일 통일은 독일 의회에 또 한번의 변화를 가져왔다. 동독에서 5%이상의 득표를 차지했던 모든 정치정당은 통일독일 의회에 입성할 수 있도록 허용됐기 때문이다.

이 파격적인 조치는 94년 없어지긴 했지만, 이 와중에 민주사회당(PDS)은 후보 개인에 투표하는 제 1기표에서 3명 이상의 의원을 이미 당선시켰기 때문에 의회 구성원이 되었다.

이러한 정당 시스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DS는 90년부터 구동독 지역에서 20%, 서독 지역에서 1%의 지지율만을 확보하고 있다. 동독인은 통일독일 전체 유권자의 6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PDS는 94년 때와 마찬가지로 제1기표에서 3명 이상의 의원을 당선시켜야만 5%조항을 극복하고 의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PDS가 이번 선거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크다. PDS가 이처럼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 5당체제에서는 그 어느 당도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여당이 되기는 힘들게 돼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민·녹색, CDU-CSU와 같은 연합체제도 과반수 득표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것이 PDS의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옛 동독 공산당 후신인 PDS의 원내진출 여부에 따라 향후 독일 의회의 정당 시스템 자체가 변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독일 총선 결과의 불투명성을 높이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날이 희박해지는 유권자들의 특정 정당 선호도다. 80년대까지만 해도 SPD와 CDU-CSU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을 당원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사라진지 오래다.

최근의 홍수와 급증하는 실업률 등은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을 선호하는 대신 사안별로 정당에 대한 선호도를 표명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90년 선거 때 유권자들의 16%가 선거당일까지도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TV토론등 총리선거에만 관심▼

또 다른 이유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미국식 정치’의 확산이다. 국민이 직접 총리를 뽑는 것이 아닌 데도 국민의 관심은 온통 총리 출마를 선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현 총리와 에드문트 슈토이버 CDU-CSU 후보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려 있다. 그리고 TV 토론회는 국민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독일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큰 문제는 경제이며 어느 당이 승리를 거둔다하더라도 결과는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총선을 앞둔 현재로선 지배적이다.

그러나 만일 PDS가 다시 의회로 진출해 SPD나 CDU-CSU의 집권을 방해하는 요소로 등장한다면 독일 정치는 흥미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막스 카스 세계정치학회(IPSA) 수석 부회장·독일 브레멘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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