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설훈식 폭로' 용납될 수 없다

  • 입력 2002년 4월 23일 18시 19분


민주당 설훈 의원은 지난주 금요일 “최규선씨가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을 통해 이회창 전 총재에게 2억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설 의원은 최씨와 윤 의원이 나눈 대화내용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으며 이를 2, 3일 안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는 제보를 받고 며칠 동안 확인작업까지 거쳤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공개를 약속했던 주초가 되면서 그는 발을 빼기 시작했다. 제보에 대한 확인작업을 했다면서도 정작 폭로의 핵심인 녹음테이프 내용은 들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뒤늦게 “그 부분(내용을 직접 듣지 않고 믿을 만한 제보라고 판단한 근거)은 내가 경솔했다”고 둘러댄다. 이제 그의 남은 주장은 “테이프를 이번 주 초까지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갖고 있는 사람이 까질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설 의원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상대의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메가톤급 폭로’를 한 것이 분명하다. 이 사실만으로도 설 의원과 민주당은 정치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만약 설 의원이 계속 녹음테이프를 공개하지 못한다면 그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제 더는 ‘설훈식 무책임한 폭로’가 용납될 수 없다. 그가 대통령 아들들 비리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여권의 처지를 반전시키기 위해 이른바 ‘맞불 작전’을 펴려 했다면 이는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짓이다. 설 의원은 ‘더러운 공작정치’의 혐의를 벗으려면 이제라도 폭로의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놓을 테니 기다리라는 식의 태도는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다.

집권당인 민주당도 ‘증거 없이 폭로했겠느냐’며 느긋해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갖 비리 연루로 청와대가 쑥밭이 된 터에 ‘DJ 가신(家臣)’출신은 ‘아니면 말고 식’ 폭로를 한대서야 어느 국민이 이 정권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