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고스포드 파크', 상류층 사냥파티에 숨은 '두얼굴'

  • 입력 2002년 4월 4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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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는 지난달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들러리’였다.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손에 들어온 트로피는 각본상, 달랑 하나였다. ‘내쉬빌’ ‘숏컷’ 등으로 이전 4차례나 감독상 후보로 지명됐지만 번번히 탈락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경력과 나이(77)을 감안할 때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감독상도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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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 먹어도 괜찮은 영화일까. 그러나 ‘아카데미측’의 판단과 관계없이 ‘고스포드…’는인간의 다양한 ‘얼굴’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다.

1930년대 영국의 시골 저택인 고스포드 파크. 부호인 맥코맥 경(마이클 갬본)은 친척인 귀족들과 가수, 할리우드의 영화 프로듀서 등을 초청해 사냥 파티를 갖는다. 이들은 신분과 부에 어울리게 하인을 거느리고 있고, 하인들도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있다.

영화는 트렌담 백작 부인(매기 스미스)의 풋내기 여시종인 메리(켈리 맥도날드)의 눈을 통해 상류층은 물론 시종들의 세계를 꼼꼼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영국 상류층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끝날 무렵 맥코맥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반전(反轉)을 맞는다. 파티에 참석한 10여명의 손님을 비롯해 저택 안의 사람들은 모두 맥코맥을 죽일 동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추리극이라고 주장하지만 미로같은 퍼즐을 맞추는 재미는 없다. 추리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전도 지나치게 친절한 복선 탓에 밋밋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은 낯선 배우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 좀 지루한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는 반전이 일어날 때까지 ‘완행열차’처럼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되는 데다 추리의 난이도도 낮다. 하지만 ‘고스포드…’의 진정한 매력은 시대를 옮겨놓은 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에 있다. 맥코맥 저택이야말로 당시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시중하는 자와 시중받는 자, 이른바 ‘두 종류’ 인간이 식탁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구분된다.

초대 손님들은 처음에는 우아한 농담과 품위있는 매너를 보이지만 결국 맥코맥의 돈을 보고 몰려든 ‘파리떼’임이 드러난다. 또 주인과 하인은 은밀한 성(性)으로 연결돼 있다. 영화는 이런 관계들을 통해 인간의 탐욕, 허영,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맥코맥의 죽음으로 파티의 막이 내려지기 직전까지 멜로와 코미디를 섞어가며 얼굴을 바꿔간다. 한가지,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려면 알트만 감독의 느린 화법에 몸과 마음을 맡겨라. 12일 개봉. 15세 이상.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이 대사!▼

#트렌담 백작 부인의 여시종 메리와 고스포드 파크의 하녀장 엘시의 대화. 메리가 맥코맥 경 피살에 관한 진실에 접근하자.

메리: (누군가가) 살인할 거라는 건 뭘로?

엘시: 진정 훌륭한 하인의 재능이 뭘까? 앞을 내다보는 능력. 난 훌륭한 하인야, 완벽한 최고 하인. 시장하다 싶으면 음식, 피곤을 느끼면 침대. 본인들보다 더 먼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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