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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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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송유관을 건설하게 되면, 주 정부들이 전력사업의 규제를 풀면, 그래서 엔론이 전력을 공급하게 되면, 중남미 송유관 사업을 따내면,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지면…, 막대한 돈을 벌게 될 것’이라는 식의 가정에 근거해 건설된 허망한 제국이었다는 것.
엔론 임직원들은 이처럼 실현되지 않은 이익을 미리 나눠가졌다. 그는 뉴욕의 고급 호텔에 있는 엔론 전용 스위트룸에서 할리우드의 스타처럼 검은색 가죽 바지를 멋지게 차려입은 린다 레이 엔론 전 회장 부인을 만났을 때 몰락의 냄새를 맡았다. 엔론 임원들의 시계는 최고급이었고, 임원 부인들의 금 귀고리는 크기부터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타오른 ‘허영의 불꽃(Bonfi-re of The Vanities)’은 윤리의식마저 태워버렸다.
영국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도 28일 엔론이 돈과 섹스, 난잡한 생활을 뒤섞은 칵테일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엔론에서는 사내 불륜이 만연했고, 고위 임원들의 이혼이 전염병처럼 유행했으며, 심야 회의가 끝난 사무실의 유리벽이 남녀가 내뿜는 김으로 흐려졌다는 얘기가 휴스턴에 자자했다.
에너지 거래부서에 일했던 한 직원은 “그건 미친 짓이었다”면서 “심지어 사생활에서도 원칙이 무너졌으며 모든 것이 섹스와 돈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었다”고 술회했다.
엔론은 석유가격의 붕괴로 더 이상 ‘해적질’을 할 수 없게 된 석유회사들이 하나 둘 떠나간 휴스턴을 80년대 중반부터 점령했다. 엔론 임원들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같은 유명인사들이 모여 사는 휴스턴 교외 리버오크스에 대저택들을 짓기 시작했다.
제프 스킬링 사장은 대리석에서 소파 벽지 그림에 이르기까지 엔론의 기업 로고색인 검은색과 흰색으로 집을 장식했다. 휴스턴 일대에서 엔론 직원 부인들은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와 부드러운 털 스웨터, 가죽 바지로 유명했다.
수집한 것은 사치품뿐만이 아니었다. 엔론은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졸업자 가운데 최고의 인재들이 뉴욕이나 실리콘 밸리로 가지 않고 휴스턴을 선택하도록 설득했다. 감독과 규제 아래에 놓여 있던 월가와는 달리 이목을 꺼리지 않고 탐욕과 허영의 문화로 인재를 끌어 모았다. ‘승진 아니면 해고(rank or yank)’라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매년 15%를 해고했다. 반면 우수한 실적을 낸 직원들에게 준 엄청난 규모의 성과급은 ‘자동차의 날(Car Day)’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성과급이 나오는 날이면 멋진 스포츠 카들이 회사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엔론 직원들은 금전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서로 유착됐다. 회계담당자들이 월가의 신용을 얻기 위해 큰 이익이 난 것처럼 장부를 분식해도 엔론 문화에 젖어있던 직원들이나 컨설턴트들은 모른 채 그냥 지나갔다.
물론 최고위 임원들은 엔론이 ‘유리성’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 때부터 자신들의 주식 지분을 대량으로 현금화했다.
그리고 갑자기 음악이 멈췄다. 저축과 연금은 날아가 버리고 경력이 파괴됐으며 미국판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취조실에 끌려 들어갔다.
텔레그래프지는 엔론의 파국은 정치적인 마녀사냥이 앞으로 수년간 계속될 워싱턴이나 월가가 아닌, 화려한 연극 무대였던 휴스턴에 더 강한 여진을 남기고 있다고 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