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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23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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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의 치명적인 단점은 나머지 취업 희망자들이 철저히 배제되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스무살 나이에 치러지는 대학 입시에서 이미 개개인의 인재 가치가 결판나는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속담 한마디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전통적 가치를 여지없이 압도하는 형국이다. 대학입시 과열의 근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 학생이나 시골 학생 모두 명문대를 가고싶어 하는데 입학 정원은 제한되어 있으니 백약이 무효인 것은 당연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완상(韓完相) 부총리가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학벌 타파’를 내세우면서 ‘기업 입사서류에 학력란을 없애자’고 주장했다가 다른 장관들의 반론으로 궁지에 몰렸다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정책을 펴가면서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벽에 좌절감을 느끼는 그의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교육정책이 즉흥적인 처방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아래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학벌주의와 같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관행과 맞서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벌주의가 문제라면 왜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당장 해결할 수 없으면 수십년 후에라도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 교육부 수장의 역할이다. 곧바로 다른 장관들의 반격을 받을 ‘준비 안된’ 한마디를 불쑥 내놓은 것에 대해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한 부총리의 교육 철학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은 요즘 ‘청소년 공부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일본 문부성이 초등학교에 우열반을 도입하고 보충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은 일본 청소년의 학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도 청소년 학력 저하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 경쟁에서 인재의 질(質)로 승부해야 하는 한국도 지금은 ‘학벌 타파’보다는 ‘학력 높이기’에 더 신경쓸 때가 아닌가.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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