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누명 벗겨줄것"…'무기수 정씨 재심청구' 기각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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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뢰인도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기각’이라는 말을 차마 주고 받을 수 없었다.

정진석씨(가명·67). 1972년 9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원 춘천의 ‘초등학교 5학년생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구속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선고받은 ‘흉악범’.

정씨는 그 후 15년 2개월을 복역하다 87년 모범수로 출소했고 다시 10여년간 숨어 지내다 99년 11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의 현재 직업은 목사. 남쪽 산골 마을의 조그만 교회를 맡고 있다.

정씨의 재심청구사건 재판부는 5일 기각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즉시항고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재심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29년간 힘들게 이어온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변호인단의 이백수(李白洙)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변호사는 ‘사건’만 수임하고 ‘고통’까지 수임하지는 않는 법인데 이번에는 의뢰인의 고통까지 떠맡아 더 괴롭네요.”

고통의 당사자는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잊은 것인지, 아니면 할 말이 너무 많은 것인지…. 정씨는 재심청구와 공판과정에서 툭하면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이날은 표정조차 메말랐다.

“어떠시냐”는 물음에 그는 힘겹게 한마디했다. “변호사님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닙니까….”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그의 말은 이날 결정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 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현실 사법제도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재판부가 밝힌 기각이유의 핵심은 29년이 흐른 뒤에 이뤄진 증인들의 진술번복을 믿기 어렵다는 것. 주심판사는 또 “사건의 실체(진실)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으며 형식적으로 재심요건이 되는지에 대해서만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진실’은 누가 판단하고 누가 밝히는가. 81년 7월 ‘전주 비사벌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구속 기소된 김시훈(金時勳·48)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 재판 진행 중 풀려났다. 진범이라는 ‘진실’이 우연히 붙잡혔기 때문이다.

92년 11월 ‘서울 신림동 여관 살인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웅(金基雄) 순경도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누명을 벗었다.

94년에 만났던 김시훈씨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폐인이 돼있었고 그 후 행방을 찾기 어렵다. 또 김 순경은 당시 “나의 누명을 벗겨준 것은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아니었다”고 절규했었다.

정 목사는 다시 산골 교회로 떠나면서 말했다. “하느님만이 나의 누명을 벗겨줄 것”이라고.

서울고법 형사5부(이종찬·李鍾贊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사안에 대해 재판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재심요건에 해당하거나 법원이 이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이 사건의 경우 물증이 없고 옛 증인들이 위증했다는 확정판결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증인들의 번복된 진술만으로는 재심사유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씨의 변호인단은 “형식논리에 치우쳐 사건의 실체를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29년 전의 기억인 만큼 구체적인 부분은 틀릴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기 마련”이라며 “증인들이 스스로 당시 거짓증언을 했다고 자백한 것을 외면한 법원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6월과 7월 재판부의 사전심리 과정에서 증인 이모씨(63·여)는 “당시 억압적 수사분위기 속에서 정씨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했으며 한모씨(39) 역시 “당시 어린 나이에 겁을 집어먹고 경찰이 대답하라는 대로 따랐다”고 증언했다.

<이수형·이정은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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